
관세는 원래 세금이다. 세금이란 게 대체로 그렇듯 재미없고, 계산이 많고, 내 주머니와 직결돼서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 그런데 2026년 들어 관세가 갑자기 스릴러 장르로 넘어왔다. 대통령이 “전 세계에 관세를 매긴다”라고 밀어붙이던 흐름에 법원이 브레이크를 걸었고, 그 타이밍에 중동에서 폭격과 보복이 오가며 유가가 튄다. 같은 주인공, 다른 무대, 비슷한 방식이다. 규칙이 불리해지면 판을 바꾸는 것, 그리고 그 판의 이름을 “비상사태”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란 카드’라는 표현이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카드라는 말만큼 정확한 비유도 드물다. 포커판에서 패가 꼬이면 사람은 게임을 접지 않는다. 배팅을 올리거나, 룰이 다른 테이블로 옮기거나, 딜러에게 시선을 돌린다. 트럼프의 정치는 늘 그런 리듬을 갖는다. 상대가 중국이든 유럽이든, 법원이든, 이란이든, 싸움의 무대를 갈아끼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연장한다. 문제는 그 무대가 바뀔 때마다 한국 같은 수출·에너지 의존 국가가 제일 먼저 흔들린다는 점이다. 우리는 늘 “다른 나라 이야기”를 구경하는 것 같지만, 계산서는 가장 빨리 우리에게 날아온다.
관세라는 이름의 ‘비상사태’가 막혔다
관세를 가장 쉬운 말로 풀면 국경의 톨게이트다. 물건이 들어올 때 통행료를 받는 것이다. 누가 내느냐는 복잡하다. 명목상 수입업자가 내지만, 현실에서는 가격으로 분산돼 소비자·기업·공급망 전체가 나눠 떠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세는 언제나 정치적으로는 “상대국에게 벌금을 때린다”가 되지만, 경제적으로는 “우리도 같이 아프다”가 된다. 그래도 대통령이 관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즉시 눌러서 뭔가가 바뀌는 버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에서 그 버튼은 더 노골적으로 “비상사태 레버”와 결합했다. 무역적자 같은 경제 현상을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그 위협을 이유로 광범위한 관세를 한 번에 걸었다. 이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된 것이 IEEPA라는 미국의 비상 경제권한 법이다. 원래 이런 법은 ‘전쟁이나 테러 같은 외부 위협이 있을 때, 상대국 자산을 동결하거나 거래를 막는’ 쪽에 더 자주 쓰이는 성격이다. 쉽게 말해, 돈줄을 잠그는 스위치에 가깝다. 그런데 관세는 세금을 걷는 일이고, 세금은 헌법적으로 의회 권한이라는 상징성이 크다. “비상”이라는 단어로 그 경계를 넘어가려 하니, 결국 법정으로 갔다.
미 연방대법원은 2026년 2월, IEEPA를 근거로 한 광범위한 관세가 대통령 권한을 넘었다는 취지로 결론을 내렸다. 판결의 핵심은 “비상권한 법 문구를 그렇게까지 늘려서 관세라는 거대한 세금 권한을 통째로 넘길 거라면, 의회가 훨씬 더 명확하게 써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다. 법원이 말한 것은 “관세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 “이 방식으로, 이 법을 들어, 이 규모로 휘두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즉, 관세의 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가장 편한 문’이 막힌 것이다.
그래서 바로 다음 장면이 나온다. “그럼 다른 문으로 들어가면 되지”라는 식이다. 미 행정부가 언급하는 대안은 여러 갈래다.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 관행을 조사한 뒤 때리는 방식도 있고,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특정 품목을 겨냥하는 방식도 있고, 일정 기간만 임시 관세를 매기는 방식도 있다. 다만 공통된 단점이 있다. 시간이 걸리거나, 절차가 필요하거나, 의회의 손을 빌려야 하거나, 법적 다툼이 또 생길 수 있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원샷”이 아니다.
여기서 관세가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외교·안보와 섞이는 지점이 나온다. 트럼프식 관세는 ‘관세를 내리면 경제 협조를 받는다’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관세 조정이 안보 프레임워크와 맞물리고, 어떤 나라가 “미국의 경제·안보 목표에 충분히 정렬(alignment)하면” 혜택을 준다는 식으로 설계된다. 관세가 시장의 언어가 아니라 동맹의 언어가 된다. 그리고 이런 구조에서는 한국 같은 동맹국이 관세 협상의 상대이면서 동시에 안보 협상의 상대가 된다. 두 테이블이 하나로 합쳐진다.
법원이 관세 레버를 꺾어놓은 순간, 트럼프에게 더 절실해지는 것이 있다. 다시 “비상”을 말할 수 있는, 더 설득력 있는 무대다. 경제적 비상사태는 법정에서 토론이 길어지지만, 안보적 비상사태는 토론 시간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이란이 등장한다.
이란 카드: ‘진짜 비상사태’는 관세보다 훨씬 강하다
이란 문제는 미국 정치에서 오래된 난제다. 핵, 미사일, 역내 대리세력, 해상 교통로, 이스라엘과의 충돌 가능성까지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 묶음은 경제와 연결되는 순간 폭발력이 커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석유와 가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는 길목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는 이란에 대한 “주요 전투 작전”을 선언하며 군사 행동의 목적을 ‘임박한 위협 제거’와 ‘핵무기 보유 차단’으로 걸었다. 발언의 수위는 한 번 더 올라가 ‘정권 교체’에 가까운 메시지로 읽히는 대목도 있다. 군사 작전이 실제로 어디까지 확대될지, 어떤 출구 전략을 갖고 있는지, 동맹과 역내 국가들이 얼마나 깊게 말려 들어갈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전쟁은 시작보다 끝이 더 어렵고, 공습은 ‘무력 과시’일 수도 ‘긴 캠페인의 첫날’일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란 이슈가 발생하는 순간 세계 경제의 체감 온도가 확 바뀐다는 점이다.
그 스위치를 켜는 곳이 호르무즈 해협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호르무즈가 전 세계 석유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초크포인트’ 중 하나라고 본다. 2024년 기준으로 이 해협을 통과한 석유 흐름은 하루 평균 2천만 배럴 규모로 추정되며, 전 세계 석유 소비의 약 5분의 1에 해당한다. LNG도 상당량이 이 길을 지난다. 이 통과 물량의 대부분이 어디로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EIA 분석에서 호르무즈를 지난 원유·콘덴세이트와 LNG는 2024년 기준 상당 비중이 아시아로 향한다. 즉, 이란과 붙은 바다의 불안은 중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의 인플레이션·무역수지·제조원가 문제로 직결된다.
여기서 한국의 취약점이 정확히 드러난다. 한국은 에너지를 ‘수입해서 가공하고 수출하는’ 구조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래서 에너지 공급이 흔들리면 공장만 멈추는 게 아니라 환율·물류·금리·소비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국내 무역·물류 업계는 호르무즈가 막히면 해상 운임이 크게 오르고(추정치로는 50~80% 수준까지), 보험료가 급등하며, 우회 물류는 배송을 며칠 단위로 지연시킬 수 있다고 본다. 대체 경로가 “있다”와 “실제로 굴러간다”는 다른 문제다. 오만의 항만을 쓰고 육상 운송을 섞는 아이디어는 종이에선 가능하지만, 주변국 공역·도로·항만이 전쟁 리스크를 함께 맞으면 그 종이는 금방 구겨진다.
그럼 “비축유가 있지 않냐”라는 말이 나온다. 맞다. 한국은 국가 비축과 민간 재고를 합치면 국제 기준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의 비축을 갖고 있다는 발표가 있다. 이런 비축은 ‘물리적 단절’에 대비한 시간벌이 장치다. 다만 비축유는 유가가 뛰는 것을 막지 못한다. 유가는 시장의 공포를 먹고 오르며, 그 공포는 물류·보험·환율과 붙어서 실물경제로 전이된다. 결국 비축유는 “당장 끊기지는 않는다”는 말은 해주지만, “값이 안정된다”는 말은 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전쟁형 리스크에서 진짜 변수는 공급량이 아니라 가격과 기대심리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조가 미국의 인센티브와도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과거보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낮고, 호르무즈 통과 물량이 미국 경제에 직접 꽂히는 강도는 아시아보다 작다. 다시 말해, 같은 사건을 두고도 미국은 ‘전략적 목표’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아시아는 ‘물가와 제조원가’에 더 먼저 시달릴 수 있다. 여기서 동맹의 체감온도 차이가 생긴다. 미국은 안보 카드를 크게 치기 쉬워지고, 한국은 그 부작용을 더 크게 맞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관세와 이란이 연결된다. 관세는 경제를 흔드는 도구이고, 이란은 경제를 흔드는 안보 사건이다. 트럼프식 세계관에서 이 둘은 같은 서랍에 들어 있다. “경제 문제는 안보 문제다”라는 문장이 관세에서는 법정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안보에서는 훨씬 쉽게 통한다. 실제 전투가 시작되면 행정부는 ‘결정 속도’라는 무기를 얻고, 동맹국에게는 협조 요청의 명분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 협조는 단순히 군사적 지원만이 아니라, 제재 동참, 물류 협력, 에너지 조달, 산업정책 조정 같은 경제적 선택까지 포함하기 쉽다. 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받던 “정렬하라”는 주문이 안보 테이블에서 더 강한 목소리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결론이 “한국은 끌려다닌다”로 끝나면 너무 단순하다.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입장’이 아니라 ‘옵션’을 늘려야 한다. 에너지는 공급선과 계약 구조를 다변화하고, 물류는 우회 경로의 실험을 평시에 해두고, 금융은 급등하는 보험료·운임이 기업 현금흐름을 때릴 때 버틸 장치를 준비해야 한다. 외교는 더 어렵다. 미국과의 동맹은 기본값이지만, 중동과의 관계는 생존의 인프라다. 이 두 개를 분리해서 보지 말고, 한 장의 시트로 관리해야 한다. 관세가 안보와 결합하는 시대에는 “우리는 경제만 한다”가 통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안보만 한다”도 통하지 않는다.
요컨대, 관세가 막혔다고 해서 관세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다. 전쟁 카드가 나왔다고 해서 관세 카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둘은 번갈아 나오면서 서로의 효과를 증폭시키기도, 서로의 부작용을 떠넘기기도 한다. 한국의 과제는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어떤 카드가 나오든 치명타가 되지 않게 설계를 바꿔놓는 일이다. 세계가 카드 게임이 됐다면, 우리는 최소한 보험 든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Reference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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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tune, Strait of Hormuz: Here are alternate routes around the choke point (Jun 23, 2025) — https://fortune.com/2025/06/23/strait-of-hormuz-alternate-routes-oil-prices-energy-markets-iran-us-attack-saudi-arabia-uae-pipelines/
- Topic seed (context only): YouTube — https://www.youtube.com/watch?v=umMyfAzmqq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