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엔 코피가 나도 야근하는 게 미덕이었지만, 요즘엔 회식 자리에서 핀잔을 듣는 정도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분류되곤 한다. 전 세계 팀장들이 공통으로 머리 아파하는 문제다. 코로나 기간에 늘어난 재택근무가 줄어들고 직원들이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 이슈가 다시 부각됐다. 2019년 한국에서 관련 제도가 도입된 이후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도 잦아졌고, 마치 폭발 직전의 풍선처럼 ‘괴롭힘’ 개념 자체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졌다. 이 글에서는 국내외 법·제도 변천, 연구 정의, 재택근무 트렌드, 신고 통계 등을 차례로 살펴보고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제도와 인식의 변화
국가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다루는 법과 제도가 생겨난 시점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스웨덴이 1993년부터 ‘직장 내 희롱 방지’ 규정(Ordinance Concerning Victimisation at Work)을 마련했고, 벨기에(1996), 영국(1997), 네덜란드(1999) 등도 90년대 후반에 관련 법을 강화했다. 2000년대 들어 스페인이 2001년부터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을 산업안전보건 차원에서 규정했고, 2002년 프랑스는 노동법에 ‘도덕적 괴롭힘’ 금지 조항을 신설하며 형사처벌까지 도입했다. 한국은 2019년 7월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제76조의2)을 도입했다. 2018년 말 정부가 ‘직장 괴롭힘 근절 대책’을 발표한 뒤 입법이 추진되어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되었고, 이후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2021년 10월 법을 개정하여 조사 비밀누설 금지, 과태료 규정 등을 신설했다. 한편 2019년에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일터에서의 폭력 및 괴롭힘 협약」(C190)을 채택했는데, 전 세계 각국이 이를 비준하고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한국 법에서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상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권력이나 힘의 우위를 이용한 일방적 괴롭힘, 취업 규칙이나 업무 지시를 넘어서는 부당한 요구가 대상이다. 학계에서도 유사한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직장 괴롭힘은 반복적이고 의도적인 부정적 행위(pattern)가 대상(예: 욕설, 따돌림, 과도한 업무부과)으로, 피해자가 스스로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권력 불균형)인 경우로 본다. 요컨대 단발성 불만과 달리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폭언·행동이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법과 연구 모두 괴롭힘을 “지위를 이용한 반복적 폭력”으로 본다.
복귀 후 실태와 대응
재택근무 이후 사람들 간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자 괴롭힘의 형태도 변했다.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경험 비율이 크게 늘었다. 미 노동연구소(WBI)는 2021년 미국 근로자 30%가 자신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해, 2017년의 19%에서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괴롭힘을 “업무 방해와 굴욕·위협을 주는 반복적 괴롭힘”으로 정의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수치가 나온다. ILO가 글로벌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 세계 취업자 중 23%가 평생 동안 업무 환경에서 폭력이나 괴롭힘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 중 심리적 괴롭힘(욕설, 위협 등)은 18%에 달했다. 한국에서도 신고 건수가 2019년 2천여 건에서 2024년 1만2천여 건으로 폭증했다. 하루 평균 50건꼴이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사안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생겨난 원격·하이브리드 근무는 괴롭힘의 양상을 달라지게 했다. 대면 감독 없이 온라인 채팅이나 화상회의로 소통하면서, 상사와 동료가 더 쉽게 공격적인 언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연구자는 “화면 뒤에 가려져 있으면 더 못되게 굴기 쉽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Slack 그룹에서 누군가를 빼놓거나, 채팅으로 무시하는 ‘디지털 따돌림’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반대로 회사 밖에서 일과 사생활 경계가 허물어지며, 집 환경을 비아냥거리거나 사적인 신상을 들먹이는 일도 생겼다. 즉, ‘괴롭힘의 영역’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어 넓어진 셈이다. 여기에 코로나 기간 일손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던 스트레스가 얹혀, 일부 관리자들이 회의 도중 공개적으로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경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응을 촉구한다. 우선 피해자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우니 조직 내에 명확한 신고 절차와 익명 리포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 무급사비아 차지 같은 사례에서 보듯 법제화도 중요한데, 아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가 직장 괴롭힘 방지 법안을 제정했다. 한국 정부도 2023년 말 법 개정안에서 특수고용노동자·영세사업장까지 보호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업 차원에선 예방교육과 공정한 조사 시스템이 필수다. 상사가 권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1대1 코칭을 강화하고, 사례 발생 시 조직 내 인권위원회나 제3기관에 의뢰해 객관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괴롭힘의 경계는 결국 조직문화에 달렸다. 경영자는 말실수 여부를 넘어서 ‘이렇게 일하면 누구나 괴롭힘으로 느낄 수 있겠다’는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작은 갈등도 커져 재앙으로 번지기 전, 사전에 선을 명확히 긋고 관리하는 것이 답이다. 글로벌 추세를 봐도 괴롭힘 대응은 전 세계적 의제가 된 지 오래다. 예를 들어 ILO 협약은 국가들이 ‘폭력 없는 작업환경’을 보장하라 권장한다. 한국 사회 역시 법 제정 후 인식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괴롭힘이 단순한 불편함인지 처벌 대상인지 혼란스러운 시대, 모든 구성원이 인간 대 인간의 예의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조직문화와 제도가 함께 성숙할 때, 비로소 일터의 고통이 정상범위를 넘어설 때 가해자와 관리자 모두 명확히 책임지는 현실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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