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문맹이었던 고대근동 왕은 정말 ‘문맹’이었나, 그리고 기록은 누가 만들었나

고대 왕의 기록이 왕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서기관 집단이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든 텍스트라면, 우리가 역사로 읽는 것은 무엇인가. 기록 권력과 역사 서술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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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왕이 썼냐”가 아니라 “왕의 목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냐”이다

“고대근동 왕이 문맹이었다면, 그 많은 기록은 대체 누가 남겼나?”라는 질문은 사실 두 겹이다. 겉겹은 단순하다. 글 못 읽고 못 쓰는 왕이 나라를 운영할 수 있나? 속겹은 더 재밌다. 우리가 ‘왕의 기록’이라 부르는 텍스트는 과연 누가, 어떤 절차로,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었나라는 문제다. 이 속겹으로 들어가면, 왕의 문해력(읽기/쓰기)이 100점이냐 0점이냐보다 더 중요한 게 보이기 시작한다. 왕권을 굴리는 방식 자체가 “정보를 생산·포장·보관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문자(특히 설형문자)는 누구나 툭툭 쓰는 생활기술이 아니었다. 기록은 행정(곡물, 노동, 세금, 군수 등)을 위해 태어났고, 그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도시 엘리트 중에서도 소수였다. “글자 아는 사람”이 적었다는 말은, 곧 “글자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과 동치다. 그리고 그 직업군이 바로 서기관 집단이다.

왕이 글을 손수 새겼는지(또는 손수 쓰고 지웠는지)는 그래서 2차 문제로 밀린다. 실제로 수많은 신아시리아 왕실 비문은 1인칭으로 “내가 정복했고, 내가 건축했고, 내가 질서를 세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텍스트는 ‘왕이 직접 타자친 자서전’이라기보다, 왕이 승인하고 책임지는 공식 발화(official voice)에 가깝다. 신아시리아 비문이 대체로 1인칭 단수로 쓰이고, 다른 누군가가 썼다는 표지를 의도적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점 자체가 그 문학장치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누가 기록했나”의 첫 번째 답은 이렇게 바뀐다. 왕이 ‘저자’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기록을 만들었다. 그 사람들이 궁정·신전·군대·창고·관청에서 일하던 서기관과 행정관료다.

문자와 서기관은 ‘지식’이 아니라 ‘인프라’였다

문해력을 말할 때 현대 감각을 그대로 들이대면 계속 엇나간다. 알파벳은 몇십 자만 익히면 읽고 쓰는 게 가능하지만, 설형문자 같은 로고-음절문자(logosyllabary)는 기본적으로 “부품 수가 다른 기계”다. 연구자들은 설형문자 체계가 수백 개(대략 600–1,000)의 기호를 갖는 로고-음절문자 범주에 속한다고 정리한다. 반면 숫자 표기 체계는 2–66개 정도 기호로 굴러간다. 그러니 숫자 표기를 잘한다고 곧바로 ‘읽고 쓰는 문해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논의가 나온다.

이 차이는 단지 “어렵다/쉽다”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갈라버리는 수준의 차이로 이어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문자 사용은 일상 전체로 퍼진 보편 기술이 아니라, 도시 엘리트 일부가 독점한 전문 역량으로 남았다는 분석이 있다. 그리고 문학 텍스트(행정·어휘 목록이 아닌 ‘문학’ 장르)가 뚜렷이 등장하기까지 꽤 긴 시간(수세기)의 지연이 있었다는 관찰도 제시된다. 쉽게 말해, 문자는 처음부터 “정부의 엑셀”에 가까웠고, 나중에야 “문학의 종이책” 쪽으로 확장된 셈이다.

서기관이 어떻게 길러졌나를 보면 이 전문성의 성격이 더 선명해진다. 바빌로니아 학교 생활을 보여 주는 자료들에 근거해, 교육은 ‘태블릿 하우스’(é-dubba, “tablet house”)에서 일찍 시작되며, 정규 훈련과 커리큘럼을 마친 사람만이 서기관이라는 칭호를 쓸 수 있었다는 설명이 있다. 문자 학습은 단순히 글자 모양을 베끼는 게 아니라, 언어(수메르어/아kkadian 등), 계약서·서신·회계 문서의 관습, 그리고 수학까지 포함하는 기술 패키지였다.

이쯤 되면 “왕이 문맹”이라는 표현 자체도 재정의가 필요하다. 고대에서의 ‘읽기/쓰기’는 등급이 있었다. 이름 정도를 판독하고 간단한 표식을 이해하는 수준, 문서를 읽고 결재·지시까지 하는 기능적 읽기, 그리고 수백 개 문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문서와 비문을 ‘작성’하는 서기관적 문식성은 같은 능력이 아니다. 이런 차이가 존재할 때, ‘왕이 문맹’이라는 말은 종종 “왕이 서기관이 아니다” 정도를 거칠게 뭉개서 말하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궁정은 ‘기록 공장’이었다

“그럼 누가 기록했나”에 대한 두 번째 답은 조직도 형태로 나온다. 왕의 세계는 개인기보다 팀플레이가 기본인 시스템이었다. 가장 잘 보이는 사례가 신아시리아 행정의 최상부 서기관들이다. 신아시리아에서 ‘chief scribe’(rab ṭupšarri)와 ‘palace scribe’(ṭupšar ēkalli)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행정·의전·지식·문서 유통을 묶어 돌리는 고위 관료다. 특히 chief scribe가 학술 문헌을 참고하고(천문점술 텍스트 등을 포함해) 왕에게 조언하며, 왕실 비문을 준비했다는 대목은 “왕의 기록”이 실제로 어디에서 생산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더 흥미로운 건 palace scribe가 사실상 궁정의 ‘문서 발송·봉인·명령서 유통’ 체계를 관리하는,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혹은 총리실) ‘비서실/공보·기록 라인’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는 정황이다. 관련 서신들에서 “궁에서 말했다/궁에서 명령했다/궁에서 봉인 문서가 왔다” 같은 표현이 반복되고, 개인 이름을 굳이 적지 않아도 ‘궁’이라는 기관 자체가 메시지의 권위를 보증하는 관료 언어가 작동한다는 해석이 제시된다. 이건 기록이 누군가의 개인 메모가 아니라, 기관이 생산하는 권력의 제품이라는 점을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기록 공장’이 실제로 얼마나 큰 규모로 돌아갔는지는 유적의 아카이브가 증명한다. 예컨대 시리아 유프라테스 강변의 고대 도시 마리 왕궁은 초기 2천년기(기원전) 근동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문자 자료를 쏟아냈다. 안내 자료는, 특정 시기의 문서가 2,000점가량(행정용 영수증·배급 기록 중심)이고, 다른 시기에는 15,000점 규모의 문서가 반세기 정도 기간에 걸쳐 축적됐다고 설명한다. 그 안에는 곡물 창고 회계부터 종교·세금 관련 문서, 그리고 왕과 지방 통치자·총독 사이의 방대한 서신까지 들어 있다. 즉, 기록은 ‘왕의 취미’가 아니라 ‘왕권의 혈관’이었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의 텔 엘아마르나에서 발견된 ‘아마르나 서신’은 수백 통 규모의 점토판 편지 아카이브이며, 설형문자와 아kkadian이 동지중해권에서 외교·행정 언어로 쓰였음을 보여 준다고 정리된다. 즉, “왕이 편지를 썼다”는 표현 뒤에는, 실제 문서를 작성·보관하는 서기관 체계가 깔려 있다.

청동기 말기의 우가릿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포착된다. 한 ‘집’에서 공식 문서가 대량으로 발견되는데, 그 공간이 단지 보관소가 아니라 서기관 학교로도 기능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리고 설형문자가 약 650개 문자로 이루어진, 가르치기 어려운 체계라는 언급이 나온다. 동시에 “도시 주민 중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기본 기록을 끼적일 정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은 훨씬 더 많았을 수 있다”는 식의 층위 구분도 제시된다. 이건 고대의 문해력을 ‘있다/없다’로 자르기 어렵다는 단서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거대한 예시는 페르시아 제국의 페르세폴리스 행정 아카이브다. 이 아카이브는 “페르세폴리스에 기반한 행정기관이 생산하고 저장한” 점토판·파편·봉인(sealings)의 두 그룹(요새 아카이브와 재무 아카이브)로 정의된다. 특히 요새 아카이브는 1933년 발견되었고, 발굴 책임자가 3만 점 이상의 점토판·파편을 추정했다고 기록된다.

시카고대학교 고대문화연구소 프로젝트 설명은 이 문서들이 기원전 500년 전후 단일 행정조직의 운영에서 나온 “하나의 정보 시스템”의 가닥들이며, 엘람어 설형문자 문서만 해도 원래 15,000–18,000건가량의 ‘원문서’를 이루는 잔해라고 설명한다. 방대한 조각들이 1936년 연구·해독을 위해 기관에 대여되었고, 2,087개 엘람어 텍스트에 대한 대규모 분석이 수행되었다는 점도 강조된다. 다시 말해, 고대의 왕권은 기록을 ‘남겼다’기보다, 기록을 ‘대량 생산’했다.

왕의 1인칭은 어떻게 제조됐나

이제 “왕이 못 썼다면 누가 썼나”는 너무 쉬운 질문이 된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왕의 1인칭으로 보이게 했나”이다.

신아시리아 왕실 비문은 (예외가 있긴 해도) 대체로 왕을 저자·화자·주인공 삼위일체로 붙여 놓는다. 그래서 텍스트는 ‘나(왕)’가 모든 업적을 수행한 것처럼 구성하고, 장군·관료·학자·기술자 같은 다른 아시리아인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을 기록한다기보다, 권력을 서사로 포장하는 방식이다.

그 뒤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왕실 서기관’이라는 제작자다. 학술 연구는 “원정 보고서나 건축 보고서를 작성할 때, 신아시리아 왕실 서기관이 사건들의 나열을 의미 있는 이야기로 바꾸기 위해(emplotment) 선택을 해야 했다”고 말한다. 전쟁 서사의 논리도 꽤 규격화되어 있다. 전쟁 이유 제시 → 행군 → 공성/전투 → 적의 패배 → 전리품·처벌·새 질서·조공 체계 같은 ‘성공의 마감’이 뒤따르는 식이다. 이건 요즘으로 치면, 원자료(현장 보고)와 최종 기사(권력의 관점으로 편집된 서사) 사이의 편집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매체의 선택’이 붙는다. 어떤 기록은 점토판에, 어떤 기록은 원통·각기둥(prism) 형태에, 어떤 기록은 석재나 금속에 새겨진다. 그리고 특정 비문은 신전 기초에 묻히거나(=미래의 왕이 발굴해 읽을 걸 가정), 건축이 완성되기도 전에 미래형·가정형 서술로 “이런 창문과 지붕과 장식을 만들었다”를 적어 넣는 경우도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즉, 기록은 사후 보고서가 아니라 “완공을 선언하는 텍스트” “미래의 발굴자를 상정한 메시지”로도 기능한다.

이런 제작 공정의 실제 운영을 떠받치는 곳이 궁정의 문서 유통 라인이다. palace scribe와 그 보조 인력은 “궁에서 보낸 편지/봉인 문서/명령” 같은 표현 속에 숨어 있으며, 개인의 이름을 지워도 ‘궁’이라는 기관이 명령의 발신처로 충분했던 관료 문법이 확인된다. 그러니까 “왕이 기록했다”는 말은 고대에서는 흔히 “왕의 기관이 기록을 발행했다”에 더 가깝다.

이 지점에서 ‘문맹 왕’이라는 서사는 사실 이렇게 전환된다. 왕은 기록을 ‘작성’하지 않아도, 기록을 지시하고 승인하고 책임지는 최종 권위로서는 충분히 개입한다. 현대 개념으로 말하면, 왕은 발화의 ‘저자’라기보다 ‘발화의 책임자(승인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 책임자와 서기관이 협업해 “왕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왕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식의 해석이 제시된다.

글을 아는 왕은 예외가 아니라 ‘브랜딩 옵션’이었다

여기서 게임이 더 재밌어진다. 어떤 왕들은 “나는 글을 안다”를 적극적으로 내세운다. 대표적으로 아슈르바니팔은 스스로 학술적 능력을 자랑했고,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고 소개된다. 그것이 “왕에게는 드문 일”이었다는 언급도 있다.

대영박물관은 이 왕이 남긴 자랑의 문장을 인용해 소개한다. 요지는 “글의 신(나부)의 지혜를 익혔고, 모든 전문가들의 서기관 기술을 붙잡았다”는 식이다. 이 문장은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 준다. 첫째, 실제로 왕실 교육에서 문서·학술 지식이 ‘권력 기술’로 취급되었다는 점. 둘째, 그걸 굳이 비문에 적어 자랑해야 할 정도로, 기본값은 “왕=서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왕의 궁정 부조에 ‘필기용 스타일러스’를 무기처럼 허리띠에 꽂고 자신을 묘사하는 장면이 언급된다. 이건 단순한 디테일이 아니라, “나는 칼만 드는 존재가 아니라 지식·기록에도 접속하는 존재”라는 정치적 자기표현이다. 그리고 그의 부친은 어린 왕자가 제국 운영에 필요한 전문지식에 직접 접근하도록 교육받기를 원했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즉, 왕이 학술과 문자를 ‘할 줄 아느냐’ 자체가 곧 통치 전략의 일부가 된다.

다만 여기서도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글을 아는 왕이 등장해도, 기록 생산 시스템은 여전히 조직적으로 굴러간다. “왕이 글을 안다”는 말은 종종 “왕이 서기관과 같은 기억·학술 자원을 정치적으로 더 잘 활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브랜딩은 ‘예외’여서 더 강력한 선전이 된다.

이스라엘과 유다도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

이 질문을 이스라엘·유다 쪽으로 가져오면, 결론은 놀랍게도 비슷해진다. “왕이 직접 기록했냐”보다 “왕권·성전·군대가 어떤 쓰기 인프라를 갖췄냐”가 중요해진다.

먼저 용어부터 보면, ‘서기관(sofer)’은 성서 텍스트에서 50회 조금 넘게 나타나며, 대체로 궁정과 성전과 연결된다고 정리된다. 그리고 군대와 연결되는 사례도 있으며, 왕조의 연대기 기록 같은 작업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언급된다. 즉 이 지역에서도 기록 생산의 중심에는 ‘직업적’(혹은 준직업적) 서기관이 있었다는 그림이 나온다.

물질 자료가 더 직접적이다. 유다 말기 군사·행정 문서로 유명한 텔 아라드 오스트라카(도기 파편에 잉크로 쓴 문서)를 분석한 연구는, 16개 문서(18면)에 대해 최소 6명의 필체/작성자를 산출했다고 보고한다. 이 연구는 군사 명령과 보급(포도주·기름·가루)의 이동 같은 실무 내용이 적혀 있고, 어떤 문서에는 “유다 왕”이나 “야훼의 집(성전)”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전문 서기관이 대신 써줬다”는 주장에 대해, 작은 요새 안에서 서로 다른 작성자가 복수로 잡히고, 본문 안에 “~을 써라” 같은 직접적인 쓰기 지시가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는 대목이 있다. 요지는 간단하다. 글쓰기가 군대·행정의 실무 기술로 어느 정도 확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종합 연구는 유다의 문자 자료가 10~9세기에 상대적으로 드물고, 8세기 이후 증가해 후기(기원전 8세기 후반~6세기 초반) ‘구히브리 문자’의 “황금기”로 이어진다는 큰 그림을 제시한다. 그리고 문서 매체로 보면, 장문은 파피루스(혹은 가죽)에, 단문 실무 문서는 오스트라카·항아리 등에 쓰이는 경향이 있으며(단 파피루스는 지중해성 기후에서 보존이 어렵다는 주의가 따라붙는다), 특히 텔 아라드·텔 라기스 같은 요새에서 오스트라카가 많이 나오는 점은 군대(최소한 장교층)에서 문해력이 비교적 높았을 가능성과 연결된다.

느부갓네살 2세의 침공으로 라기스가 파괴되기 직전 시기와 연결되는 ‘라기스 서신’(라기스 오스트라카)도 이런 맥락을 더 구체화한다. 대중적 소개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라기스 오스트라카가 기원전 6세기 초(특히 바빌로니아 침공 직전) 상황을 비추며, 어디에서 작성된 문서인지(발신·수신·보관 방식)까지 논쟁이 있는 점, 그리고 여러 ‘필체’가 관찰된다는 점이 요약된다. 즉 “누가 썼나”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개인이 아니라 문서의 이동·보관·복제 방식을 같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걸 합치면, 이스라엘·유다도 고대근동의 큰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왕이 직접 펜을 들었냐는 질문은 종종 오해를 낳는다. 오히려 현실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궁정(정치), 성전(종교), 군대(행정·군수)가 기록을 축적하고 순환시키는 ‘쓰기 네트워크’를 갖췄냐. 그리고 그 네트워크의 실무자가 서기관(혹은 서기관 수준의 문해력을 가진 관료)이다.

결론은 조금 허무하지만, 그래서 더 강력하다

결론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고대근동에서 “왕의 기록”은 대개 “왕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왕의 권위로 발행된 글”이다. 그 글을 실제 문장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은 서기관 집단이고, 그 집단은 문자라는 기술을 통해 행정·외교·군수·종교 지식을 묶는 인프라를 운영했다.

이 관점은 텍스트를 읽는 방법 자체를 바꾼다. 신아시리아 왕실 비문이 1인칭 단수로 “나”를 강하게 내세우는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내보내기보다 ‘권력의 화법’으로 사건을 조직하는 장치다. 그 장치를 돌리는 사람(서기관)은 사건을 이야기로 바꾸는 편집자이기도 하다.

동시에 왕의 개입도 지워지지 않는다. 왕은 단순히 “서기관이 알아서 쓴 글”의 얼굴마담이 아니라, 내용의 승인자이자 메시지의 사회적 책임자로서, 서기관과 협업해 “왕에게 맞는 왕의 이미지”를 만든다. 말하자면 고대의 저자성(authorhood)은 현대의 단독 창작자 모델이 아니라, **왕(승인·책임) + 서기관(구성·작성) + 기관(유통·보관)**의 합성물에 가깝다. 이런 구도를 ‘화자/작성자/책임자’로 나누어 이해하는 접근도 제안된 바 있다.

그래서 “문맹 왕”이라는 자극적인 설정은 결국 더 큰 사실을 가리킨다. 고대근동에서 권력은 칼로만 유지되지 않았다. 기록을 만들고, 기록을 쌓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정보 시스템’이 권력의 핵심 엔진이었다. 왕이 손으로 글자를 새겼는지는 흥미로운 사이드 퀘스트일 수 있지만, 메인 퀘스트는 언제나 “누가 시스템을 돌렸나”이고, 그 답은 서기관과 관료 공동체다.

References

  • British Museum 블로그: “Who was Ashurbanipal?” 및 관련 인용(아슈르바니팔의 문해력 주장, ‘나부의 지혜’ 인용, 스타일러스 묘사 등).
  • British Museum 블로그: “A library fit for a king”(학술 자랑, 스타일러스, 교육 목적, 도서관과 서판 관리).
  • Eckart Frahm, “The Neo-Assyrian Royal Inscriptions as Text…”(1인칭 서술, 저자/화자/주인공 결합, 서기관의 서사 구성(emplotment), 기초 매장과 미래 독자/축복·저주, 연대기 문제).
  • Mikko Luukko, “The Administrative Roles of the ‘Chief Scribe’ and the ‘Palace Scribe’…”(왕실 비문 준비, 궁정 문서 유통·봉인·기관 언어, chancery 역할).
  • “Writing in Early Mesopotamia” (Manifold/UMinn Press)(문자의 행정적 기원, 도시 엘리트 소수에 제한된 서기관 지식, 장르 발달의 시간 지연).
  • Karenleigh Overmann, “The Development of Literacy in the Ancient Near East”(문해력/수리력 구분, 문자 체계별 기호 수 비교, 설형문자의 기호 규모).
  • Smarthistory “Cuneiform, an introduction”(초기 기록의 행정 성격, 서기관 교육·에두바(‘tablet house’)와 커리큘럼, 문자 사용의 사회적 범위).
  • 프랑스 문화유산/고고학 웹사이트(Mari 왕궁 아카이브 소개)(문서 수량, 행정·서신·종교·세금 등 구성).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에세이 “The Amarna Letters”(아마르나 서신의 성격·규모·발견 맥락).
  • Archaeology Magazine “The Ugarit Archives”(서기관 학교 가능성, 설형문자 학습 난이도(약 650 문자), 사회 내 문해력 층위).
  • Encyclopaedia Iranica “Persepolis Administrative Archives”(요새/재무 아카이브 정의, 1933년 발견, 수량 추정, 대여·반환 맥락).
  • Institute for the Study of Ancient Cultures(University of Chicago) “Persepolis Fortification Archive”(문서 종류·원문서 규모, ‘단일 정보 시스템’ 설명, 2,087 엘람어 텍스트 분석 언급).
  • PNAS/PMC “Algorithmic handwriting analysis of Judah’s military correspondence…”(아라드 오스트라카 최소 6명의 작성자, ‘전문 서기관 대필’ 반박 논리, 행정 문해력 시사).
  • Maria Richelle “Literacy in the Kingdom of Judah: A Typology…”(유다 문자 자료의 시기별 분포, 요새 오스트라카와 군사 문해력 시사, 매체 문제).
  • The Ancient Near East Today(ANE Today) “From Texts to Scribes: Evidence for Writing in Ancient Israel”(sofer의 용례, 궁정·성전·군대와의 연결, 기록 생산자 논의).
  •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The Lachish Letters”(라기스 오스트라카의 맥락, 다양한 필체·문서 성격 논쟁, 586 BCE 직전 상황).
  • Ben Dewar(PhD thesis) “Representations of Rebellion in the Assyrian Royal Inscriptions…”(왕과 서기관의 공동 제작, 저자성/책임 구분 모델 적용).
  • (참고용) 문제 제기 영상(유튜브): “문맹이었던 고대근동 왕… 누가 기록했을까?”
Nomadamon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