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미국 대법원, 트럼프 상호관세 ‘위법’ 판결

마약 밀매와 무역적자를 안보 위협으로 묶어 비상권한을 발동했지만 대법원은 그 논리를 거부했다. 이 판결이 행정부 권한의 경계를 어디로 그었는지, 그리고 트럼프가 남은 카드를 어떻게 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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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워싱턴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국에 부과하겠다고 밝힌 ‘상호관세’ 계획이 적힌 대형 보드를 들고 있다. 보드에는 한국을 포함해 수십 개 국가에 부과할 25% 이상 관세율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10개월 후인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깜짝 선언을 내놓았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는 대통령에게 이런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헌법 제1조 8항에 따라 ‘세금과 관세’ 부과 권한은 오직 의회가 가진다는 이유에서다. 이 판결로 그간 트럼프 행정부가 IEEPA를 근거로 부과했던 광범위한 관세 조치들이 법적 효력을 잃게 됐다. 전 세계 무역 환경에는 즉각 불확실성이 커졌다.

상호관세를 둘러싼 법적 공방

이번 사태의 시작은 2025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약 밀매와 미국의 거대한 무역적자를 ‘국가 안보의 위협’이라며 두 차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월에는 캐나다·멕시코·중국발 펜타닐 유입을 이유로 해당국 수입품에 25~10% 관세(‘펜타닐 관세’)를 매겼고, 4월에는 거의 모든 교역국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미국 기업들은 이 조치에 반발했다. 교육용 완구업체 러닝리소스(Learning Resources)와 주(州) 연합 등이 워싱턴DC 지방법원에 소송을 냈고, 주류 수입업체와 자전거 부품업체 등은 국제무역법원(CIT)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법원들은 일제히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워싱턴DC 연방법원은 “IEEPA가 대통령에게 이토록 광범위한 관세 권한을 준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예비 금지명령을 내리고, 소송을 관세 전문 법정인 CIT로 옮기려는 정부 요청도 기각했다. 법원은 헌법이 “의회에만 세금·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규제(importation)’ 권한은 ‘세금을 걷는’ 권한과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헌법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주요쟁점(major questions) 원칙’도 언급했다. 수조 달러에 이르는 관세를 대통령에게 위임하려면 의회의 명확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실제로 의회는 비상조치 이전에도 1974년 무역법(Trade Act) 122조에 최고 15% 관세, 5개월 한도의 권한을 명시해 대통령에게 줬다. “IEEPA로 대통령이 모든 국가 상거래에 제멋대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면, 헌법적 균형이 무너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제무역법원도 비슷한 결론을 냈다. 2025년 5월, 이 법원은 “IEEPA가 대통령에게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무제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위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정부가 부과한 관세를 모두 무효로 판결했다. 이어 8월 연방순회항소법원(연방법원)이 전원합의체로 심리한 끝에 “이 관세 조치는 범위·수준·기간이 무제한(unbounded)”이라며 하급심 판결을 사실상 확정했다. 미뤄둔 상태였던 판결들은 9월 대법원 상고로 이어졌고, 결국 대법원이 사건을 하루 앞당겨 심리한 뒤 2월에 최종 결론을 내린 셈이다.

대법원 판결과 향후 통상 파장

대법원은 6대3 의견으로 IEEPA를 근거로 한 관세부과를 일거에 부정했다. 대다수 의견을 낸 로버츠 대법원장은 “관세는 의회에 주어진 대표적 과세 수단”이라며 “IEEPA에 관세나 세금을 부과한다는 단어도 없고, 대통령에게 무제한 과세 권한을 부여한 전례도 없다”고 판시했다. 요약하면, IEEPA의 “수입 규제(regulate importation)” 조항만으로는 ‘관세의 부과’ 권한을 포함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는 얘기다. 법무부 측은 “대통령의 국가비상 권한이 넓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 권한은 아니더라도 ‘대안적 권한’을 통해 새 관세를 부과하려는 논의가 많았는데, 대법원은 “비상권한이라도 조세권까지 포괄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이 판결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즉각 무역법 122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같은 날 아침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모든 나라에 10% 관세” 조치(최대 15%, 150일 한도)를 내놓은 것이다. 또한 301조를 근거로 추가 조사도 지시했다. 그러나 절차와 제한을 감안하면 새 관세를 대규모로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대법원 판결 자체로 이행 시한이 끝난 IEEPA 관세는 자동 소멸되지만, 세관이 환급 신청 절차를 마련해야 하고, 새 세율·정책을 의회 동의 없이 유지하는 것도 논란이다.

한편 글로벌 무역계는 앞으로 혼란을 예고한다. 미·한 정상은 작년 말 ‘관세 인하 대가로 한국의 대미 투자를 늘리겠다’는 새 협정에 서명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그 근거를 날려버리자, 한국 기업들은 물론 미국 내 프로젝트 계획까지 재검토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과 교역 중인 유럽·아시아 국가들도 갑작스런 정책 변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WTO(세계무역기구) 절차도 검토 중이다. 미국 한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상황이 급격히 바뀌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이번 판결로 관세의 입법·집행 권한을 둘러싼 논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곧바로 등장한 대체 관세 카드들은 새로운 논란을 예고한다. 앞으로 미 법정에서는 관세 환급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며, 일각에선 미국 의회가 대통령 관세권을 제한하는 추가 입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례없는 대법원 판결은 조세·통상 권한의 권력 분립 원칙을 분명히 했지만, 동시에 현장에는 적지 않은 혼란을 남겼다.

참고 자료: 미국 대법원 판결문 및 하급심 판결, IEEPA 조문, 통상법(무역법·무역확장법 등) 해설, 법률전문가 분석, 한겨레·연합뉴스·동아일보 등 주요 언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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