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암호화폐 새 규제 질서 짜는 CLARITY 법안

어떤 디지털 자산이 증권이고 어떤 것이 상품인지를 법으로 정하는 CLARITY 법안이 통과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규제 명확성이 기관 자금 진입과 혁신 속도에 동시에 작용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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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하반기, 미국 의회에서는 수년간 모호하기만 했던 암호화폐 시장의 윤곽을 드러내려는 법안이 등장했다. ‘CLARITY(명확성) 법안’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암호화폐와 디지털자산의 규제 경계를 명확히 하자는 취지다. 이 법안은 기본적으로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주류 암호화폐를 증권이 아닌 **“디지털상품(digital commodity)”**으로 규정해,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광범위한 관할권을 준다. 반대로 기존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역할은 투자계약(asset sale) 형태의 코인(일종의 디지털채권)을 다루는 쪽으로 한정한다. 한마디로 가상자산 판을 상품거래 방식으로 재편하려는 그림이다. 예를 들어, 어떤 블록체인이 특정 회사·개인에 의해 사실상 좌지우지되지 않고 (개발·발행 주체의 지분이 20% 미만인) 완전히 분산된 ‘성숙 블록체인’이라면, 그 위에 발행된 코인은 상품으로 분류된다. 이를 이용해 발행사가 1년간 7500만 달러 이하로 암호화폐를 팔 수 있도록 증권 등록(SEC) 의무를 면제해 주기도 한다.

법안 통과 시 거래소나 중개업체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기존의 중앙화된 암호화폐 거래소(CEX)는 모두 CFTC에 **디지털상품거래소(DCE)**로 등록해야 한다. 농산물 거래소처럼 ‘핵심 원칙(Core Principles)’을 준수해야 하고, 고객 자산을 기업 자산과 철저히 분리(콤밍글 금지)해야 한다. 파산 시 고객 돈을 보호하기 위해 파산법에도 손을 대고, 매물로 상장할 암호화폐에 대해 개발계획·거래내역·소스코드까지 공개하도록 규정도 담겼다. 한편 미국 은행들은 디지털상품 취급이 더 자유로워진다. 법안은 연방준비제도(Fed) 은행지주법을 개정해 은행·금융지주회사가 디지털상품 업무를 영위할 수 있게 하고, 또 암호화폐를 보관할 “공인(qualified) 디지털자산 수탁자” 규정(실제론 은행 or 신탁사)을 도입했다. 기존 SEC 관할이던 증권형 코인은 여전히 SEC 규제를 받되, 이제 불필요한 이중 규제를 피하도록 SEC·CFTC의 경계를 그어 준다. 요컨대 CLARITY 법안은 기존의 혼란스러운 규칙 대신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는 상품법(CEA) 틀 안에서 운영하라”는 새 규칙을 제시하는 셈이다.

은행·코인업계의 충돌과 시장의 술렁임

하지만 CLARITY 법안의 길은 평탄치 않다. 하원에서는 2025년 7월 찬반 294 대 134로 가결됐지만, 상원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보상 논쟁에 발목이 잡혔다. 작년 7월, 별도 법안(일명 GENIUS법)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본격 규제하면서 이미 “대여이자(payments interest)”를 금지했는데, 연장선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보유만 해도 이자를 주는 금융상품으로 보지 않겠다는 조항이 상원 초안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 주요 은행들은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며 “보유 대가로 금전·비금전적 보상을 제공할 수 없다”는 원칙을 요구했다. 반면 코인업계에선 오히려 일상적인 ‘이자 모양 스테이킹 보상’까지 제한하면 혁신을 막는다며 반발한다. 대표적으로 코인베이스는 자사 USDC(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에 연 3.5% 이자를 지급해 왔는데, 이 조항에 항의해 법안 지지를 철회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말 알려졌다.

결국 이런 대립 탓에 상원 표결은 미뤄지고 백악관이 중재에 나서야 했다. 2026년 초 백악관은 은행·전통금융 업계와 암호화폐 업계 간 만나 중재안을 제시했는데, 은행들은 당초 요구안을 완화해 “거래 내역을 수반하는 활동 보상” 정도만 허용하자고 했다. (이를테면 실제 대출·거래를 거친 경우에만 리워드를 인정하자는 것.) 백악관은 3월 1일까지 타협안을 마련하라고 각계에 압박을 걸고 있다. 그 결과 시장에서는 최근 들어 “4월 정도면 통과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이 번지고 있다. 리플사의 CEO 브래드 갈링하우스도 인터뷰에서 “규제 명확화가 이만큼 다가온 적이 없다”며 4월 통과 가능성을 언급했다. 암호화폐 예측시장인 폴리마켓(Polymarket)에서도 관련 법안이 올해 안에 통과될 확률을 **85%**까지 반영하고 있다.

반면 시장 변동성은 여전하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작년 10월 한때 사상 최고치 근처인 약 12만 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중국산 수입품 관세 논란과 규제 불확실성 속에 6~7만 달러대로 급락했다. 이런 가운데 CLARITY 법안만 제때 통과된다면, 그동안 규제 소송·불확실성에 주춤했던 기관투자자들의 마음도 돌아설 것이란 기대가 크다. 실제로 시장 예측에 따르면 법안 통과 시점 전후로 비트코인은 소폭 상승 혹은 반짝 랠리를 보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명확한 규칙은 그 자체로 암호화폐 시장에 안정감을 준다. 따라서 지켜볼 것은 CLARITY 법안의 최종 합의안과 법제화 여부다. 만약 입법 마침표가 찍히면, 그제야 미국 암호화폐 시장의 클리어웨이터(clearwater)가 기대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참고자료: 미국 CLARITY 법안 전문 및 의회 보고서, 의회 입법 타임라인, 레퍼런스 분석 보고, 코인베이스·백악관 회의 취재, 가상화폐계 전망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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