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슈퍼사이클 2막, K-조선의 물결이 시작된다

전 세계 해운·조선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1막이 컨테이너선 특수였다면 2막의 주역은 LNG선·친환경 선박이다. 한국 조선업이 이 사이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구조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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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기술 설명 일러스트

지난 수십 년 간 조선업은 20~30년 주기의 호황과 불황을 겪어 왔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에 국내 조선 빅3는 선박 수주잔고 기준으로 약 200조원대의 황금기를 맞았다. 그 뒤 2015~2020년대 초반에는 세계적 공급 과잉과 낮은 운임, 유가 하락 등으로 오랜 침체를 겪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시계추가 새 방향으로 돌고 있다. 국제사회가 친환경 선박과 신(新)연료로 대대적인 물류 혁신을 꾀하고 있고, 미·유럽을 중심으로 군함과 보조함 발주가 폭증하면서 “K-조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배 한 척을 짓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선박용 강판 가격까지 상승 조짐을 보이면서, 조선사들의 매출과 수익성은 반전에 가까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글로벌 선박 수요가 파도처럼 밀려오니 K-조선도 돛을 올릴 준비를 한다”는 식이다. 실제 최근 발표된 숫자들을 보면, 조선업계에 일어나는 변화는 단순한 기대감이 아니라 구체적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주문 홍수: 그린쉽부터 군함까지

올해 전 세계 해운·조선 시장엔 상상을 뛰어넘는 주문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우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규제가 촉매 역할을 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30년까지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최소 20% 줄이겠다고 목표를 제시했고, 실제로 각국 항만과 발주사들은 점점 엄격해지는 규제 틀에 맞추기 위해 연료전환과 친환경 선박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예컨대 지금까지 약 780척 수준이던 LNG 연료 겸용 선박은 2030년까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대형 프로젝트에 따라 LNG 운반선 발주도 급증세다. 미국·카타르 등에서 대규모 LNG 플랜트가 완공되면 국내외 LNG 선단 규모가 급팽창하여 2030년까지 최소 1400척 안팎의 LNG선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배에 실을 연료를 LNG로 바꾸려는 움직임은 머스크 같은 대형선사들이 2028~30년 인도 목표로 LNG 겸용 컨테이너선 20척을 주문할 정도다. 이처럼 ‘선박 연료의 그린 전환’은 단순히 배의 외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선박 발주 그 자체를 수백 척 단위로 밀어올리는 동력이 되고 있다.

친환경 선박뿐 아니라 기존 선대의 교체 수요도 실탄을 안기는 요소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지에서 ‘배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교체 시기를 당겨달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유럽은 최근 5년간 방위비를 두 배로 늘려 2021년 2180억유로에서 2025년 3920억유로로 껑충 뛰웠고, 2035년에는 GDP 대비 5% 방위비 지출을 목표로 한 거대한 로드맵을 수립했다. 다만 유럽은 돈을 풀면서도 무기와 배는 자국·동맹국 주문에 한정하겠다는 조건을 달고 있어, 한국 조선사들이 직접 수주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유럽국들의 전함·순양함·상륙함 발주가 한창 늘고 있어 글로벌 함정 시장은 활기를 띤다.

미국은 최근 최대 360조원대의 신조함정 예산(함정 건조 예산 36조원, 유지보수·정비(MRO) 24조원)을 확정했다. 여기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추진된 ‘해양산업 재건(MASGA)’ 구상이 반영되었는데, 그 골자는 “처음 몇 척은 동맹국 조선소에서 만들고, 나중에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회는 비원자력 수상함 보수·현대화 파일럿 사업에 약 14조원을 쓰도록 승인했고, 한국 한화오션·현대중공업 등이 이미 진출한 군수지원함 MRO 시장도 더 키우고 있다. 다만 예산에는 “중요 부품은 반드시 미국산을 써야 한다”는 ‘바이 아메리칸’ 조항도 붙였다. 쉽게 말해 미국이 “미국 조선 산업을 살리겠다”면서도 친분 국가에는 첫 물량을 맡길 테니 너희 기술로 치솟는 물량에 올라타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한화그룹과 협력해 신형 호위함을 건조하겠다고 직접 언급할 정도다.

반면 중국은 이미 작년에 전 세계 신조 주문량의 60%를 차지하며 다시 1위 자리를 굳혔다. 중국 국영 조선사들은 막대한 수주 덕에 상시적으로 채산성 낮은 함정·상업선도 감당하고 있으며, 자국 화공·LNG 플랜트 규모 확대로 선박 수요 자체도 받쳐준다. 다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자 서방 화주들이 중국산 배를 꺼리는 분위기도 생긴다. 글로벌 선박 수주량이 늘고 있다는 점은 K-조선에도 호재다. ‘빅3’ 한국 조선사는 중국에 맞설 선진 기술과 협상력을 갖춰 두터운 주문을 확보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 빅3, 숫자가 말해주는 변화

이런 글로벌 추세에 따라 국내 주요 조선사들의 성적표가 확 달라졌다. 올 1분기 기준 HD현대 중공업·미포·삼호합병 체제(HD한국조선해양)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빅3의 합산 수주잔고는 190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한때 2008년(약 200조원)과 2014년(약 200조원)에 도달했던 최고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규모다. 이미 3년 치 일감이 채워진 셈이어서, 한동안 “일감 걱정 없이 운항”할 수 있는 상태다. 특히 HD한국조선해양이 이들 수주 중 104조원(달러 기준)을,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각 44조원가량씩을 쌓아 두었다. 이처럼 고부가가치 LNG선과 특수선주 발주가 계속 늘자, 이제 조선사들은 예전에 낮은 수익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운 ‘저품질’ 물량은 거의 소화된 상태다.

결과는 확실하게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 빅3는 2025년에 합산 영업이익으로 약 5조8758억원(약 6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약 2.17조)보다 세 배 가까이 뛰어올랐는데, 마치 2007~08년 리먼 위기 직전의 호황 수준과 맞먹는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HD현대중공업 계열의 HD한국조선해양이 작년에 3조9045억원의 영업이익(전년 대비 172% 증가)을 냈고, 한화오션이 1조1091억원(366%), 삼성중공업도 8622억원(71%)을 벌어들였다. 이익률도 업계 기준으로는 파격적이다. HD한국조선해양의 영업이익률은 무려 12.7%에 이르렀는데, 조선업 특성상 원래 5%만 넘어도 ‘대박’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수익성이 뛰어오른 비결로는 “높은 가격에 수주한 선박을 처리했고, LNG선 같은 고부가선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글로벌 LNG선 수요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LNG선 가격 지수가 2020년대 들어 꾸준히 올라왔고, 올해 체결되는 컨테이너·탱커 계약에도 이 같은 추세가 반영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적 수요 변화도 맞아떨어진 결과다. IMO의 이중연료 추진선(Dual-fuel) 규제 등이 EU 중심으로 강화되자, 한국 조선소들은 자국 기업들과 협력해 DF컨테이너선, LPG·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선 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예를 들어 이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 크기의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을 본격 양산 중이다. 즉 한국 조선업계는 발주 증가라는 거대한 물결 위에 고부가 선종이라는 ‘고기’까지 얹어놓은 셈이다.

물론 새로운 슈퍼사이클이라고 모두 옛 영광을 단숨에 되찾는 것은 아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있고, 중국과의 경쟁도 만만찮다. 특히 미국은 선박의 주요 부품ㆍ엔진은 자국산을 쓰게 강제하려 해, 한국 조선사들이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전세계 공급망에서 핵심 부품을 확보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온 통계와 계약만 봐도 국내 조선업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향해 질주하고 있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배를 이제 한국에서 짓겠다”는 각국 발주처의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고, 눈앞의 실적도 2008~14년 수준으로 치솟았다. 조선업계가 주장하는 대로 “이제부터가 진짜 슈퍼사이클 2막”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References:

  • 미국과 한국경제, “K조선 ‘24조’ 역대급 기회 왔다…미국서 날아든 희소식” (2026.02.16).
  • 딜사이트, “영업익 6조 ‘대박’…조선3사, 올해도 ‘내가 제일 잘나가’” (2026.02.17).
  • Hellenic Shipping News (BusinessKorea 인용), “Korean Shipbuilders Approach Peak Boom with 200 Trillion Won Order Backlog” (2025.05.13).
  • Reuters, “LNG demand for ships set to at least double by 2030 globally” (2025.10.02).
  • Courthouse News, “Europe’s $860 billion defense plan freezes out US contractors” (2025.10.16).
  • The Maritime Executive, “China Continued Shipbuilding Dominance in 2025, Raking In Most Orders” (2026.02.04).
  • IMO 공식 사이트, “IMO’s work to cut GHG emissions from ships”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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