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한 번쯤 “거미줄이 강철보다 다섯 배 더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거미줄이 정말 그런 초강력 소재라면 우리도 벌써 상용화했을 터인데, 이상하게 100년이 넘도록 뚜렷한 결실은 없다. 왜일까? 우선 실제 거미줄의 기계적 성질을 살펴보자. 거미줄의 인장강도는 최고 수준으로 약 1기가파스칼(GPa) 안팎이다. 이 값은 강철의 중간 범위(0.2~2GPa)에 해당한다. 즉, 절대적인 강도에서 거미줄이 강철을 월등히 웃도는 건 아니다. 다만 밀도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미줄의 밀도는 강철의 약 1/6 정도밖에 안 되는데, 무게 대비 강도를 비교하면 거미줄이 더 유리해진다. 다시 말해 같은 무게로 견딜 수 있는 힘은 거미줄이 더 크다는 얘기다. 게다가 거미줄은 아주 유연하다. 인장력에 맞춰 늘어나다가 끊어질 듯 말 듯 버티는 힘이 뛰어나다. 실제로 거미줄은 강도와 연신율(늘어나는 정도)의 균형이 매우 훌륭해서, 끊어지기 전까지 에너지를 많이 흡수한다. 정리하면, 거미줄은 가볍고 튼튼하며 쫄깃한 특별한 섬유다. 이런 성질 덕분에 거미는 매우 얇은 실로 튼튼한 그물을 짤 수 있다. 마치 철근과 시멘트가 합쳐진 철근콘크리트처럼, 거미줄도 강한 결정구조와 늘어나는 고무줄 같은 영역이 합쳐진 복합재료다.
거미줄을 나노 단위로 들여다보면, β-시트 구조를 이루는 결정영역과 무질서한 코일 구조가 마치 블록처럼 섞여 있다. (출처: Du et al., Biophys J 2006)
거미줄의 단백질(스피드로인)은 크게 두 종류(MaSp1, MaSp2)로 나뉜다. 이 중 하나는 반복적인 알라닌(Ala) 서열이 많아 규칙적인 β-시트 형태로 결정화되기 쉽고, 다른 하나는 글리신-프롤린(Gly-Pro) 반복 서열이 많아 랜덤 코일 또는 β-턴 구조로 뒤틀린다. 결과적으로 베타 결정체들은 서로 촘촘히 쌓여 강철 못지않은 강도를 제공하고, 그 사이사이 무질서한 코일들은 숨겨진 늘어남 길이를 만들어내어 유연성을 더해준다. 섬유 단면을 철저히 살펴보면 아주 작은 β-시트 결정들이 나노미터 단위로 박혀 있고, 그 결정들을 연결하는 탄력 있는 단백질 매트릭스가 한 가닥 섬유를 이루는 모습이다. 이런 계층적 구조는 충격을 흡수하면서 끊어짐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마치 튼튼한 블록들(결정)과 그 사이를 이어주는 스프링(무질서 코일)으로 이루어진 커튼을 잡아당길 때처럼, 처음엔 스프링 부위가 늘어나다가 결국 일정 힘 이상에선 블록들이 어긋나면서 파손된다. 실험과 시뮬레이션 결과, 결정체 부분의 밀도가 높을수록 강도가 커지고, 무질서 코일이 많을수록 늘어남(연신율)과 인성(에너지 흡수)이 커진다. 이처럼 자연은 거미줄을 단일 특성이 아니라 둘 이상의 특성을 아우르는 초합금급 섬유로 설계했다.
그뿐 아니다. 거미줄의 구조적 특성은 물방울까지 포집한다. 건조한 사막에서는 이슬이라도 모아야 생존하는데, 일부 사막 거미들은 특수한 실 형태로 안개 입자를 모은다. 네이처지에 실린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Uloborus속의 거미가 만든 포획용 거미줄이 물방울 모으기에 최적화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 거미줄은 젖은 뒤에 실이 늘어나면서 마디(spindle knot)가 주기적으로 형성되는데, 이 마디부와 이음부 사이에는 표면 에너지와 곡률 차이가 생긴다. 결과적으로 작은 물방울이 이 마디 부분에 끌려와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쉽게 말해 거미줄이 눈금을 만들어 마치 모세관 현상처럼 이슬을 자동으로 끌어모으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원리를 모방해 인공 섬유도 제작했다. 마치 빨대를 잔뜩 꼬아 만든 거미줄 네트워크처럼, 실에 붙은 물방울들이 경사진 길을 따라 크게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결국 거미줄은 단순한 끈이 아니라, 물 자원을 모아 생존을 돕는 미세구조기술까지 숨기고 있었다.
생체모방과 인류의 도전
거미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력적이지만, 이걸 사람도 똑같이 만들기는 여전히 난제다. 거미는 한 가닥 실을 만드는 데도 고유의 방적기관이 필요하고, 그 단백질을 분리·정제해 실로 엮는 과정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과 연구자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기업(Kraig Biocraft)은 게놈공학적으로 개량한 누에고치를 통해 거미 단백질을 포함한 누에 실을 뽑았고, 2019년에는 누에가 직접 뽑은 거미줄 1kg을 약 300달러에 생산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공 사례가 있다. KAIST 이상엽 교수팀은 대장균의 대사경로를 재설계해 초고분자량(285kDa)의 거미 실크 단백질을 대량 생산했고, 이를 방적하여 케블라 수준의 물성을 지닌 거미줄 섬유(강도 508MPa, 영률 21GPa)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생체모사 방식으로 매우 튼튼한 실을 얻었으나, 여전히 거미줄처럼 완벽한 연신성과 대량 생산은 충족하지 못했다.
전통적인 화학·공정기술 외에도 요즘엔 합성생물학 기술이 거미줄 합성에 활발히 적용된다. 유전자 재조합, 인공 진화 기법 등을 동원해 이웃 원료와 비슷한 거미 단백질을 생산하고, 스피너렛을 모사한 미세유체 장치로 섬유를 뽑는 시도들이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일부 연구자들은 누에의 실유전자를 편집해 거미 단백질을 일정 비율 포함한 실을 뽑아냈는데, 이는 원래 누에 실보다 더 질긴 것이었다. 이처럼 인류는 작은 누에부터 큰 염소까지 온갖 생물체를 도구로 쓰면서 거미줄을 연구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의 은밀한 나노 설계를 완벽히 재현하진 못했다. 특히 거미 속에 코딩된 단백질 서열을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수십~수백그램 단위의 고농도 도프(dope) 용액이 필요한데, 이는 현재 기술로는 불안정하고 끈적거려 다루기 어렵다.
흥미롭게도, 거미줄뿐 아니라 다른 곤충의 기발한 구조도 인류 기술에 영감을 준다. 예컨대 도토리를 갉아먹는 도토리거위벌레(Curculio)의 뾰족한 주둥이는 입구는 좁지만 내부는 병 모양처럼 넓은 구멍을 딱딱한 도토리에 만든다. 국립생태원과 기계연구원 연구진은 이 ‘호리병형 구멍 뚫기’ 동작을 모방해 드릴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다. 기존 드릴에 날 길이를 조절하는 모터를 더해 마치 벌레가 효율적으로 파내듯 구멍을 확장하며 뚫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전략을 배우면, 인류는 기존 도구로는 어려웠던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다.
거미줄의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물 하나에 담긴 나노 구조와 화학 조합은 매번 놀라움 그 자체다. 언젠가 자연과 같은 방법으로, 낮은 온도에서 물만으로 우아하게 섬유를 뽑아내는 기술이 나오면, 정말 강철을 넘어서는 미래 소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연구자들은 한 올 한 올 거미줄 실처럼 실험실에서 만들다 망가뜨리고, 또 다시 배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쩌면 100년째 풀지 못한 숙제는, 우리의 물음 자체를 키우는 거대한 실타래인지도 모른다.
Reference
- Zheng Y. et al., Nature 463, 640–643 (2010).
- Buehler M. J. et al., J. R. Soc. Interface 7, 1709–1721 (2010).
- Du N. et al., Biophys. J. 91, 70–80 (2006).
- Oyen M., Cambridge Univ. Eng. Dept. News (2013).
- KAIST News (2010) on Lee S.Y. et al. (PNAS 107, 14059–14063).
- Poddar H. et al., Engineering Biology 4, 1–6 (2020).
- 국립생태원 보도자료 (2018), “도토리거위벌레 모방 확공형 드릴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