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흩어지는 괴짜들, 실리콘밸리의 미래는

연결이 빠를수록 특정 지역에 뭉칠 이유가 줄어든다. 실리콘밸리를 만든 것이 장소가 아니라 밀도 높은 실험 문화였다면, 그 문화가 분산될 때 어디서 다음 실리콘밸리가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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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짐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진짜 대상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흩어진다”는 말은 지도 위의 점이 이동한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더 자주 “어떤 종류의 만남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작동한다. 실리콘밸리가 강했던 이유는 단순히 회사가 많아서가 아니라, 회사·대학·투자자·공급업체·서비스가 서로 얽혀 촘촘한 동네를 만든 ‘클러스터’였기 때문이다. 경제학이나 정책 문서에서 말하는 클러스터는 대충 “서로 연결된 기업과 기관이 한 지역에 몰려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실리콘밸리의 본체는 ‘땅’이 아니라 ‘밀집된 연결’이다.

클러스터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물리적이다. 가까이 붙어 있으면 인재 풀이 두꺼워지고(뽑을 사람이 많아지니 더 과감하게 뽑는다), 산업용 서비스가 촘촘해지고(법무·회계·마케팅·리크루팅이 전문화된다), 지식이 ‘사람 이동’과 ‘잡담’으로 샌다. 이런 이점은 문서로 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 “괴짜”는 개인 성격이라기보다, 그런 이점 위에서 살아남는 생존 형태에 가깝다. 별나게 보이는 사람일수록 더 빨리 연결을 타고, 더 빨리 실험하고, 더 빨리 실패하고, 또 더 빨리 다음 판으로 옮겨 탄다.

흥미로운 점은, 실리콘밸리 스스로도 “여긴 지명만이 아니다”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는 사실이다. 브리태니커의 실리콘밸리 항목은 이 지역이 과수원 지대였던 ‘Valley of Heart’s Delight’ 시절부터, 이제는 “디지털 경제의 신화” 같은 상징으로도 작동한다고 적는다. 즉 ‘실리콘밸리’는 지리와 관념이 겹친 단어다. 그러니 흩어짐도 두 겹으로 읽어야 한다. 한 겹은 사람·사무실·투자가 이동하는 물리적 흩어짐이고, 다른 한 겹은 “연결의 밀도”가 낮아지는 문화적 흩어짐이다.

과수원에서 차고로, 차고에서 연구단지로

실리콘밸리의 서사에서 자주 잊히는 프롤로그는, 여기가 원래 과일로 먹고살던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차대전 이전 산타클라라 카운티 경제는 농업에 묶여 있었고, 1939년에는 산호세가 세계 최대 수준의 통조림·건과일 가공 중심지였다는 기록이 나온다(통조림 공장과 포장·출하 시설 수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같은 자료는 전쟁과 군사·항공 인프라(예: 모펫 필드 등)가 지역 산업 구조를 바꾸는 동력으로 들어왔다고도 설명한다. 즉 “괴짜들의 놀이터”는 처음부터 낭만적 빈 땅이 아니라, 농업·군사·교통·인구 이동이 교차하는 생활권이었다.

여기에 결정적 촉매가 된 것은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와, 그 안에서 산업을 ‘밖에’ 만들려 했던 프레더릭 터먼 같은 인물이다. 국가 차원의 자료(전기·기록)에서도 터먼이 전쟁 연구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정부 연구비·계약을 유치하고, 학교의 연구 역량과 지역 산업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정리된다.

이때 등장하는 상징이 휴렛팩커드(HP)의 ‘차고 신화’다. HP가 남긴 사료 성격의 브로슈어는, 빌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가 1938년 팔로알토의 애디슨 애비뉴 집(작업용 차고가 딸린 곳)을 구해 초기 제품(오디오 오실레이터 등)을 만들었고, 1939년 회사를 설립했으며, 이름은 동전 던지기로 정했다는 식의 디테일까지 기록한다. 차고는 연구실·개발 공방·초기 생산 시설을 겸한 공간이었다고도 적는다.

그런데 차고 신화가 과장되는 지점이 있다. 차고는 “시작점”이지만, 혼자서 생태계를 만든 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진짜 발명품은 ‘연구단지’ 같은 인프라 쪽에 더 가깝다. 1951년 스탠퍼드가 토지를 떼어 “스탠퍼드 산업단지(후일 스탠퍼드 리서치 파크)”를 추진했고, 1953년 첫 건물이 완공되며 운영이 본격화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첫 입주 기업이 바리안 어소시에이츠였다는 사실도 스탠퍼드 내부 문서·역사 아카이브 글에서 확인된다. 이 산업단지는 이후 전 세계 산업단지 모델이 되었다는 평가까지 붙는다.

이렇게 보면 실리콘밸리의 기원은 ‘반항’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가 땅을 굴리고, 연구가 돈을 부르고, 기업이 들어오고, 사람이 섞이는 구조”가 먼저 깔렸다. 차고는 그 구조 위에서 가장 잘 팔리는 포스터가 되었을 뿐이다.

반문화는 왜 ‘컴퓨터’를 좋아했나

이제 “반문화적 DNA”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960~70년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컴퓨터가 어떤 의미였는지부터 봐야 한다. 당시 주류 조직(정부·군·거대 기업·대학)이 쓰던 컴퓨터는 ‘개인’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베이 에어리어에서는 컴퓨터를 “중앙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개인이 손에 쥘 도구”로 재해석하려는 흐름이 강해졌다. 지역의 개인용 컴퓨팅 태동을 정리한 자료들은, 연구기관(예: SRI 인터내셔널), 커뮤니티 활동, DIY 해커 문화가 섞이며 개인 컴퓨팅 혁명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한다.

상징적인 장면은 1968년 이른바 “Mother of All Demos”로 불리는 시연이다. 여러 자료가 공통으로,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우스·화면 기반 협업·하이퍼텍스트적 링크 등 ‘현대 컴퓨팅의 기본 문법’에 가까운 요소를 공개 시연한 사건으로 이 데모를 위치시킨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컴퓨터는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 기계”라는 상상과 달리 “인간의 협업과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라는 상상을 밀어 올렸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역시 반문화의 상상과 결합한다. DARPA는 1969년 ARPANET의 첫 메시지(기록상 10월 29일 밤)를 남긴 자료를 공개해 왔고, UCLA 쪽 기록도 같은 시각에 첫 메시지 전송이 이루어졌다는 로그 기반 설명을 제공한다. 이 초기 네트워크의 한 노드가 SRI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베이 에어리어가 “개인용 컴퓨팅”뿐 아니라 “연결된 컴퓨팅”의 기원을 같이 품고 있었다는 그림이 선다.

그리고 이 모든 기술적 흐름에 ‘감정’과 ‘생활양식’을 붙여 준 매개가 홀 어스 카탈로그 같은 매체였다. 스튜어트 브랜드가 주도한 이 카탈로그는 1968년 처음 발간되어, 공동체 운동·자급·학습·도구에 대한 집착을 “리스트와 사용법”으로 유통시켰다. 한 편의 문화 기사이지만, 당시 카탈로그가 ‘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를 강화한다’는 인식(도구·지식·기술의 자가 조달)을 퍼뜨렸고, 컴퓨터 같은 디지털 도구도 그 스펙트럼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흐름은 1980년대의 온라인 공동체로도 이어진다. 더 웰(The WELL)은 1985년 브랜드와 래리 브릴리언트가 만들었다고 스스로 소개하고, 백과사전도 설립 시기와 거점을 정리한다. 그리고 학술적으로는, 60년대 반문화가 ‘작은 기술’을 통한 의식·공동체 변화를 꿈꾸던 방식이 초기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뒷받침하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런 문헌을 따라가면 “반문화적 DNA”는 ‘무조건 정부·기업이 싫다’가 아니라, “도구를 개인에게 돌려주고, 네트워크로 흩어진 사람들을 묶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에 가깝다.

성공의 공식은 낭만이 아니라 규칙이었다

실리콘밸리가 잘 돌아간 이유를 “자유로운 분위기” 같은 말로만 설명하면, 가장 중요한 부품을 놓친다. 그 부품은 ‘사람이 움직이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예컨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연구는 “실리콘밸리” 변수(연구에서 정의한 지역)가 컴퓨터 산업 종사자들의 직장이동 확률을 유의미하게 끌어올리는 결과를 표로 제시한다. 해석 문장까지 포함해서, 이 지역에 산다는 것 자체가 월간 단위의 이동 가능성과 연동된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 이런 이동성은 지식이 ‘회사’에 잠기는 것을 막고, 실패한 회사의 인력이 다른 회사로 흡수되며 생태계가 복구되는 속도를 높인다.

노동 이동성을 뒷받침하는 법·제도 논의도 오래된 축이다. 2018년 스탠퍼드 로스쿨 쪽 법학 논문은 캘리포니아의 비경쟁 약정(일반 고용 맥락의 noncompete) 미집행/무효 규범이 지역 경제와 클러스터 역동성 논의에서 중요한 변수로 다뤄져 왔음을 정리하면서, §16600 및 관련 판례(예: Edwards 사건)를 인용해 “캘리포니아에서 비경쟁 약정이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구조를 설명한다. 여기서 핵심은 “누가 더 착하냐”가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는 비용이 낮을 때 지식이 새 회사로 흘러 들어가고, 그 흐름이 지역 전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집단행동 문제의 프레이밍이다.

또 하나의 부품은 이민과 다국적 인재 네트워크다. 퍼블릭 폴리시 인스티튜트 오브 캘리포니아 보고서는 1990~2000년대 실리콘밸리 고기술 산업에서 이민자 비중이 매우 크며(과학·공학 노동력의 3분의 1, 인도·중국계 CEO 비중 등), ‘브레인 드레인’보다는 ‘브레인 서큘레이션’ 개념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괴짜들이 모인다”는 이미지를, 실제로는 “국경을 넘는 네트워크가 지역에 접속한다”는 구조로 바꿔 읽게 만든다.

마지막 부품은 돈의 지리다. 벤처캐피털은 요즘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특정 거리와 특정 식당이 ‘거래 인프라’였던 시절이 있었다. 세쿼이아 캐피털의 공식 연혁은 1972년 설립과 초기 펀드 규모·초기 투자 사례를 서술하며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막 퍼지던 시기였음을 강조한다. 클라이너 퍼킨스도 1970년대 벤처가 ‘검증되지 않은 자본’이던 시절에 창업자에게 자본과 자원을 결합해 투자하는 모델을 만들려 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WIRED는 멘로파크의 샌드힐 로드가 왜 벤처의 상징이 되었는지, 왜 “한 복도에서 협업해 딜을 만들던” 문화가 가능했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 상징성이 어떻게 변했는지 구술 형태로 담아낸다. 핵심은 늘 같다. 위험을 감당하는 돈은 ‘사람과 가까운 곳’에 오래 머문다.

이번에 흩어지는 건 사람일까, 규칙일까

2020년대 중반 실리콘밸리(그리고 더 넓게는 베이 에어리어)가 겪는 변화는, “사람이 떠난다”보다 “만남이 비싸졌다”에 가깝다. 이때 ‘비싸다’는 건 집값만 뜻하지 않는다. 사무실 공실, 출퇴근, 도시의 안전·쾌적성,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공간에 있을 이유”가 줄어드는 비용 구조를 말한다.

원격근무는 그 변화를 구조적으로 고정시킨다. 2025년 전미경제연구소 워킹페이퍼는 여러 설문 간 정의 차이를 보정한 뒤, 2025년 기준 20~64세 노동자의 유급 근무일 중 재택근무가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선호 추정치’를 제시한다. 즉 원격·하이브리드는 유행이 아니라 “미국 노동시간의 상당 부분”으로 편입된 상태다.

게다가 “하이브리드는 생산성을 망친다”는 통념도 점점 약해진다. 2024년 네이처 논문은 주 2일 재택 같은 하이브리드 방식이 성과를 해치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를 보고한다. 이를 해설한 스탠퍼드 뉴스는 동일 연구를 바탕으로 생산성·승진에 ‘0 효과’였고 이직률(유지)에 큰 영향을 줬다는 요지를 정리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같이 모여야 한다”는 명분이 예전보다 더 엄격한 비용-편익 계산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에서 도시는 숫자로도 흔들린다. 캘리포니아 재무부 인구통계팀는 2024년 캘리포니아 인구가 증가해 2025년 1월 1일 기준 3,952만 9,000명에 도달했다고 발표했고, 샌프란시스코는 2024→2025 구간에서 (-0.4%) 같은 감소율이 표에 나타난다. 반면 샌타클라라 카운티는 같은 표에서 대체로 정체에 가까운 수치로 보인다. “실리콘밸리 전체가 빠져나간다”는 단정 대신, “도시별로 회복 속도와 충격이 다르다”는 해석이 더 안전하다.

사무실 시장은 더 노골적이다. CBRE는 2025년 4분기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시장의 전체 공실률을 32.8%로 제시하면서, 같은 분기의 순흡수(점유 증가)와 평균 임대 요청가(연간 기준)도 함께 공개한다. 수치는 “도심이 비었다”는 감정적 표현을, “비었는데도 일부는 다시 채우는 중”이라는 복합 상태로 바꿔 준다.

여기에 자본의 편식이 결합한다. NVCA·PitchBook의 2025년 3분기 벤처 모니터는 AI가 전체 벤처 딜에서 차지하는 비중(딜 가치 기준과 딜 수 기준)을 그래프로 제시하며, 동시에 2025년에 ‘5백만 달러 미만’ 소액 라운드의 비중이 전년 대비 하락했다고 적는다. 그리고 같은 보고서의 다른 페이지는 “소수 기업에 투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을 언급한다. 이건 실리콘밸리의 오래된 리듬(큰 테마가 뜨면 돈이 몰린다)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신규·실험적 팀’의 생존 공간을 좁히는 신호이기도 하다.

도시가 이 문제를 ‘리모델링’으로 풀려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샌프란시스코는 2023년부터 도심 상업용 건물을 주거로 전환하는 적응적 재사용 프로그램을 만들고(규제 완화·절차 간소화), 2026년 2월에 별도 금융지구(세입 증가분 재투자 같은 방식)를 도입하는 흐름을 공식 문서로 정리한다. 즉 “사람이 덜 모이면, 건물의 용도를 바꿔서라도 사람을 모아야 한다”가 현재 도시의 답안이다. 다만 언론 보도는 인센티브가 늘어도 ‘프로젝트가 실제로 착수되는가’는 다른 문제라고 짚는다. 실리콘밸리의 흩어짐은 그래서 ‘인구 이동’보다 ‘도시 기능 재설계’의 문제로 가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다음 형태는 ‘중심 없는 중심’이다

그럼 미래는 어떻게 생겼나. 결론부터 말하면, 실리콘밸리는 사라지기보다 “덜 지역적이고, 더 시스템적인 무엇”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클러스터의 장점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 장점을 누리는 방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클러스터 정의를 정리한 국제기구 문서들도 공통으로, 클러스터는 한 지역에 “기업+기관+공급망+지식”이 동시에 모여 생산성과 혁신이 올라가는 구조라고 말한다. 이 구조는 영상통화만으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는다.

다만 ‘상주’의 필요가 줄어든다. 하이브리드가 성과를 해치지 않는다는 실증이 축적되면,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거기 살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가야 하는 곳”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때 실리콘밸리/샌프란시스코는 완전한 거주지가 아니라, 면접·피치·네트워킹·중요한 설계 회의 같은 ‘고밀도 상호작용’을 처리하는 일종의 라우터가 된다. 연결의 중심이 “주소”가 아니라 “행사·사람·자본의 스케줄”로 바뀌는 셈이다.

이런 전환은 역설적으로 실리콘밸리의 반문화적 기원을 닮았다. 프레드 터너의 연구가 보여주듯, 60~70년대 반문화는 지리적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네트워크 포럼” 같은 방식으로 묶었다. 그 포럼이 인쇄물(Whole Earth Catalog)이든, 온라인 커뮤니티(The WELL)이든, 핵심은 “흩어져도 연결로 하나의 장을 만든다”는 발상이었다. 오늘의 원격·분산은 그 발상을 자본과 노동시장 차원으로 확장한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실리콘밸리가 무조건 낭만적으로 ‘열린 공동체’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은 지금도 특정 테마에 과하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그 집중은 초기 실험의 다양성을 깎아 먹을 수 있다. 반대로, 집중이 강해질수록 “그 밖의 실험”은 지역 바깥(혹은 온라인)에서 더 싸게, 더 빠르게 자란다. 실리콘밸리는 아마 두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된다. 하나는 AI 같은 초대형 자본·인프라가 필요한 분야의 ‘본진’이고, 다른 하나는 그 본진 바깥에서 자라는 수많은 실험을 흡수·인수·재투자하는 ‘거대한 순환 펌프’다.

그래서 “흩어지는 괴짜들”이라는 문장을 다시 번역해 보면 이렇게 된다. 괴짜가 떠나는 게 아니라, 괴짜가 작동하는 방식이 바뀌는 중이다. 예전엔 한 동네의 차고·카페·연구단지·투자사 복도에서 연결이 발생했다면, 이제는 여러 도시와 온라인 공간에 걸쳐 ‘느슨한 망’으로 연결이 발생한다. 다만 그 느슨한 망의 허브는 여전히 실리콘밸리일 가능성이 높다. 실리콘밸리의 미래는 “중심 없는 중심”, 즉 물리적 집중이 완화된 상태에서도 자본·인재·상징의 중심성을 유지하는 형태로 가는 쪽에 더 가깝다.

참고문헌

  • 브리태니커의 실리콘밸리 항목, Silicon Valley | region, California (Valley of Heart’s Delight, “state of mind” 등).
  •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Economic History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농업 기반·1939년 산호세 가공산업, 전쟁·군사 인프라와 산업 전환).
  • 캘리포니아 주 역사보존국, BIRTHPLACE OF SILICON VALLEY (터먼의 구상, 휴렛·패커드의 1938년 차고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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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 공학 100주년 아카이브, A period of transformation (스탠퍼드 산업단지 1953 개장·모델 확산, 터먼의 대학-산업 연계).
  • 스탠퍼드 리서치 파크, The Story of the Stanford Industrial/Research Park (1951년 승인·209에이커, 1953년 첫 입주 등).
  • AURP, The History of Research Parks and Their Evolution into Innovation Districts (1951년 스탠퍼드 산업단지 “세계 최초 연구파크”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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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레드 터너, Where the Counterculture Met the New Economy (반문화와 네트워크 공동체의 연결).
  • The New Yorker, The Complicated Legacy of Stewart Brand’s “Whole Earth Catalog” (1968년 발간, 도구·개인 역량 강조, 실리콘밸리와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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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미경제연구소, Buckman et al., Measuring Work from Home (2025년 WFH 비중 추정).
  • 네이처, Bloom et al., Hybrid working from home improves retention… (하이브리드 성과/인식 변화).
  • 캘리포니아 재무부 인구통계팀, E-1 2025 Press Release (주 인구·도시/카운티 변화 표).
  • CBRE, San Francisco Office Figures Q4 2025 (공실률·흡수·임대료).
  • NVCA & PitchBook, PitchBook-NVCA Venture Monitor Q3 2025 (AI 비중·소액 라운드 감소·집중화 언급).
  • 샌프란시스코 플래닝, Downtown Adaptive Reuse Program 및 브로슈어 (프로그램·인센티브·금융지구 관련 정리).
  • WIRED, How Sand Hill Road Became the Main Street of Venture Capital (벤처의 지리·문화적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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