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다카이치는 ‘차기’가 아니라 ‘현직’이다
‘다카이치가 무섭다’는 말은 원래 캐릭터 감상평처럼 들리기 쉽다. 말투가 세다, 표정이 차갑다, 정치 성향이 빡세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기 딱 좋다. 그런데 2026년 초의 다카이치를 놓고 그 말을 꺼냈다면, 그 ‘무서움’은 성격이 아니라 권력의 배치에서 나온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2025년 10월 총리로 선출된 뒤, 2026년 2월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을 316석(전체 465석)까지 끌어올리는 압승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말 많은 유력 후보”가 아니라 “룰을 바꿀 수 있는 현직”이 됐다.
이 승리가 왜 중요하냐면, 숫자가 곧 레버(지렛대)이기 때문이다. 중의원 316석은 단순 과반이 아니라 ‘3분의 2’ 선에 걸친다. 일본에서 개헌 발의의 첫 관문이 “각 원(중·참의원) 3분의 2”인 만큼, 중의원만 놓고 보면 “발의 카드”를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구도가 된다. 물론 참의원과 국민투표라는 더 큰 두 관문이 남아 있어 속도가 곧장 붙는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개헌을 이야기하는 정치인”과 “개헌 절차를 밟아볼 수 있는 정치인” 사이에는 체감 온도 차가 크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연정이다. 다카이치는 공명당과의 26년 연정을 끝내고, 보수 성향이 강한 일본유신회와 새로 짰다. 이 조합은 개헌·재정·행정개혁 같은 ‘큰 판’ 이슈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릴 여지가 크다. 즉, “브레이크를 밟는 파트너” 대신 “엑셀을 같이 밟을 파트너”를 골랐다는 평가가 가능해진다.
위기에서 탄생한 총리: 스캔들, 연정, 그리고 ‘강한 일본’ 서사
다카이치의 부상은 ‘갑자기 인기 폭발’ 같은 단순 서사가 아니다. 2023~2024년에 터진 자민당의 정치자금(비자금·리베이트) 스캔들이 일본 정치의 내부 구조를 흔들었다. 파벌 중심의 자금·인사·공천 시스템이 신뢰를 잃었고, 그 여파로 파벌 해산과 연쇄 선거 타격이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유럽의회 리서치 서비스(EPRS)는 이 스캔들이 신뢰 추락과 선거 패배로 이어졌고, 다카이치가 ‘신뢰 회복’ 과제를 짊어진 채 출범했다고 정리한다.
이때 중요한 건 “유권자가 무엇에 화났나”다. 스캔들이란 게 늘 그렇지만, 사람들은 디테일보다 구조에 분노한다. “룰은 우리에게만 엄격하고, 정치권은 자기들끼리 빠져나간다”는 감각이 퍼지면, 그 다음엔 ‘강한 리더십’과 ‘정리하는 사람’ 이미지가 급부상한다. 다카이치는 바로 이 구간에서, (1) 스캔들로 흐트러진 판, (2) 생활물가 압박, (3) 안보 불안이라는 세 가지 불만을 “강한 일본”이라는 한 문장으로 묶어 팔 수 있는 인물이 됐다.
연정 바꾸기는 이 서사의 실전 버전이다. 공명당이 빠지면서 다카이치 정부는 취약해질 수도 있었는데, 대신 유신회와 정책 합의를 통해 생존 방법을 선택했다. EPRS는 새 연정 합의에 “음식 소비세(식품) 2년 면제”, “의원 정수 감축”, “사회보장 개혁”, “정치자금 개혁” 같은 굵직한 패키지가 포함됐다고 적는다. 가벼운 ‘선심’이 아니라 정치판의 판갈이를 동반한 거래다.
여기서 한국이 체감하는 불안이 한 겹 더 생긴다. ‘불안정한 일본 정치’는 예측이 안 되는 대신, 실행의 엔진도 약하다. 반대로 ‘권력이 정렬된 일본 정치’는 방향이 마음에 안 들면 더 무섭다. 다카이치가 ‘무섭다’는 말은 대개 후자에서 나온다.
다카이치의 정책 패키지: 돈을 풀고, 방패를 키우고, 룰을 바꾸려 한다
다카이치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책을 이념이 아니라 묶음 상품으로 본다’는 관점이다. 다카이치의 핵심은 경제·안보·제도(헌법/치안)를 따로 파는 게 아니라 한 세트로 묶어 “불안한 시대의 생존 패키지”로 판다는 점이다. 이 패키지가 작동하면 지지층이 넓어진다. 물가·임금이 불안하면 돈을 풀고, 안보가 불안하면 방패를 키우고, 그 모든 걸 빨리 하려면 제도(헌법·정보·치안)까지 손본다는 흐름이다.
첫째 축은 “경제에 체온 올리기”다. 2025년 10월 총리 취임 직후의 국회 연설에서 다카이치는 물가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임금·보조금·세제 조정 등을 통해 체감 부담을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가솔린 ‘잠정세율’(provisional tax rate) 폐지 추진도 이 연설에 포함돼 있다. 그리고 AI·반도체 같은 전략 산업에 대해 정부·민간이 함께 선제 투자하는 성장전략을 내걸었다.
이 경제 축에서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일본은행과의 관계”다. 다카이치의 경제 기조는 대체로 확장 재정·완화적 통화정책에 우호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움직인다. 실제로 Reuters는 다카이치가 ‘완화적’ 성향으로 평가되고, 일본은행 정책이 시장의 관심사인 상황을 전한다. 선거 이후 총리와 일본은행 총재가 만난 사실 자체도 “정치와 통화정책의 거리”라는 오래된 논쟁을 다시 불러온다. 연정 파트너 쪽에서 “정치가 중앙은행에 과하게 개입하면 안 된다”는 공개 경고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축은 “안보의 근육 키우기”다. 다카이치는 2022년에 마련된 일본의 ‘3대 안보 문서’(국가안보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 이후 변화한 환경을 이유로 ‘근본적 방위력 강화’를 내세운다. 취임 후 연설에서 ‘방위비 GDP 2%’ 목표에 대해 “앞당겨(전방 배치) 조치를 취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했고, 3대 문서를 이듬해 말까지 손보겠다는 방향도 분명히 했다. AP 역시 다카이치가 방위비 2% 목표를 기존 계획보다 앞당겨 달성하겠다는 기조를 정리한다.
셋째 축은 “룰을 만지는 정치(개헌)”다. 다카이치는 총리 재임 중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제시하는 단계”까지 가고 싶다고 공식 연설에서 밝혔다. 그런데 일본의 개헌은 ‘총리가 마음먹으면 되는 이벤트’가 아니다. 일본 헌법 제96조는 각 원 3분의 2 찬성으로 발의한 뒤, 국민투표에서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고 규정한다. 일본 헌법은 1947년 시행 이후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절차가 작동하는 순간 자체가 상징성을 갖는다(성공 여부와 별개로).
이 세 축이 하나로 묶이면 “무서움”이 생긴다. 사람을 무섭게 하는 건 화난 표정이 아니라, 리모컨이 손에 쥐어지는 순간이다. 예산(돈), 방위(힘), 헌법·제도(룰)를 같은 방향으로 눌러볼 수 있는 조합은 그 자체로 주변국에 긴장을 준다.
아베의 유산과 다카이치의 차이
한국에서 다카이치가 ‘무섭다’는 말이 나올 때, 거의 항상 아베 신조의 그림자가 같이 따라온다. 다카이치가 아베의 멘토-후계 구도 속에서 보수층의 기대를 모아 왔다는 점은 공식 분석에서도 반복된다. EPRS는 아베가 다카이치의 ‘멘토로 여겨졌다’고 정리한다.
닮은 점부터 보면, 큰 방향은 ‘전후 체제의 재정렬’이다. 헌법 9조(평화조항) 주변 논쟁을 포함한 개헌 담론, 방위력 강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같은 전략 구호의 계승은 다카이치 시대에도 반복된다. 다카이치가 “총리 임기 중 개헌 제안”을 직접 언급했다는 사실이 그 연장선이다.
다만 차이도 분명하다. 첫째, 연정 파트너가 달라졌다. 공명당이 빠지면서, 안보·개헌 이슈에서 ‘속도 조절 장치’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PRS는 공명당이 보수적 전환에 반발해 26년 연정을 끝냈고, 다카이치가 유신회로 갈아탔다고 적는다.
둘째, 경제 운영의 결이 다르다. 다카이치는 확장 재정과 정부 주도 투자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이미지가 있고, 중앙은행의 독립성 이슈까지 함께 띄우는 편이다. EPRS는 다카이치의 ‘Sanaenomics’가 확장 재정과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 관여 확대 같은 요소를 포함한다고 요약한다. Reuters는 다카이치 정부가 경제정책 회의에 이른바 ‘리플레이션’ 성향 인사들을 기용하며 재무성의 긴장감이 커졌다는 흐름을 전한다.
셋째, 상징정치에서 ‘하드라인과 실리’가 섞여 나온다. 다카이치가 야스쿠니를 둘러싼 국내 보수층 압박을 받는 동시에, 집권 이후에는 “국제적 이해를 얻는 환경”을 먼저 만들겠다고 말한 사례가 그렇다. 2026년 2월 Jiji Press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는 야스쿠니 참배 가능성을 두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얻겠다고 언급했고, 집권 후에는 참배를 자제해 왔다고도 정리돼 있다. 이 지점이 다카이치의 ‘현실 정치 버전’이다. 센 말을 하지만, 외교·시장·연정의 비용 계산도 같이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관통하는 ‘정체성’ 요소로, 다카이치가 일본회의와 연결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일본회의 측이 공개한 ‘국회의원’ 명단 자료에 다카이치 이름이 포함돼 있고, 외신들도 다카이치의 우익 성향 네트워크를 다룬다. 이런 네트워크는 정책이 막힐 때도 ‘상징적 이슈’를 계속 끌고 갈 동력을 제공할 수 있어, 주변국이 더 민감해지는 지점이 된다.
한일 관계의 스위치: 켜면 붙고, 잘못 켜면 터진다
한일 관계는 “좋아질까 나빠질까” 같은 운세형 질문으로는 잘 안 보인다. 실제로는 스위치가 몇 개 있고, 그 스위치를 누가 언제 어떻게 건드리느냐의 문제다. 다카이치 시기의 스위치는 크게 네 가지다: (1) 안보 협력, (2) 경제·공급망, (3) 역사 상징, (4) 영토 상징.
먼저 ‘붙는’ 스위치부터 보자. 2026년 1월, 다카이치와 이재명(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본 나라현에서 정상회담을 했고, 일본 총리실은 이를 “셔틀 외교”의 첫 기회로 표현한다. 회담 요약에는 한일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 한일 및 한미일 안보 협력, 경제·경제안보(공급망 포함) 협의 심화, 초국경 사기 대응 협력, 그리고 북한 문제 공조가 포함돼 있다. 다카이치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전략 환경이 더 엄중해질수록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취지로 말한 것도 같은 방향이다.
이런 합의는 단순한 ‘좋은 말’이 아니라 구조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다카이치가 중국과 대만 이슈로 외교 마찰을 겪는 국면에서, 한국과의 안보·공급망 협력은 일본 입장에서 ‘확실한 안전판’이 될 수 있다. 다카이치의 대만 관련 발언을 두고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며 “철회”를 요구했다는 Reuters 보도는, 다카이치 체제에서 중일 관계가 쉽게 경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일 갈등이 커질수록 일본은 주변 파트너를 더 필요로 하게 되고, 그때 한일 협력 스위치가 켜질 여지가 커진다.
반대로 ‘터지는’ 스위치는 상징정치다. 대표가 야스쿠니 신사다. 야스쿠니는 실제 정책보다 “태도”의 신호로 읽힌다. 다카이치 본인도 그걸 안다. 그래서 집권 후 참배를 자제해 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동시에 “국제적 이해를 얻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야스쿠니가 한번 ‘행동’으로 찍히는 순간, 한국·중국 내 여론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속도는 정책 협의 속도보다 빠를 가능성이 높다. ‘정상끼리의 합리’가 ‘국민의 감정’에 묻히는 전형적 구간이다.
또 다른 상징은 독도/다케시마다. 흥미로운 건 다카이치가 야권 시절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각료가 가야 한다”는 강경 пози션을 보였는데, 총리가 된 뒤에는 각료 파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Jiji Press 보도가 나왔다는 점이다. “총리의 다카이치”는 “정치인 다카이치”보다 한 단계 더 큰 비용표를 본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큰 구조 스위치가 개헌이다. 개헌은 곧바로 전쟁이 난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주변국 입장에선 “전후 체제의 문장”을 바꾸는 트리거다. 당장 일본 헌법 96조가 요구하는 절차(각 원 3분의 2 + 국민투표)를 충족해야 하니, 자동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다카이치가 국회에서 ‘개헌 제안’을 공식 의제로 올리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한일 관계는 매년 반복되는 ‘역사·영토 파동’에 더해 “제도 변화”라는 새 파동까지 관리해야 한다.
여기서 한국 내 일본학자 호사카 유지 같은 인물의 경고가 힘을 얻는 이유도 설명된다. 호사카는 세종대에서 한일관계·독도 문제를 연구해 온 학자로 소개돼 왔고, 한국 사회에서 일본의 우경화·역사 문제를 해석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이런 ‘해석 프레임’이 강해질수록, 다카이치의 상징정치 스위치는 더 민감한 장치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스위치 위에 깔리는 배경음이 있다. 안보·경제가 함께 흔들릴 때, 한일은 “붙어야 해서 붙는” 협력을 하면서도 “감정 때문에 터지는” 충돌을 반복해 왔다. 다카이치 체제는 그 두 흐름이 동시에 빨라지는 시기다.
References
- 일본 총리실(관저) 정책연설: 연정 구성(자민·유신), 물가대책, 전략투자, 방위력 강화(방위비 2% 전방 조치), 개헌 추진 의지 등이 포함된 2025년 10월 연설문.
- 유럽의회 EPRS 브리핑(2025년 10월): 다카이치 총리 선출 배경, 공명당 이탈과 유신회 연정, 경제·안보·이민/외국인 정책, 야스쿠니 이슈 등을 정리.
- Reuters (2026-02-16): 다카이치 총리와 일본은행 총재 회동, 통화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민감성, 일본은행 인선 영향 가능성.
- Reuters (2026-02-16): 연정 파트너(유신회) 측의 “일본은행에 대한 정치 개입 경계” 발언 및 식품 소비세(8%) 중단 구상.
- Financial Times (2026-02-08, 2026-02-09): 중의원 선거 압승(자민 316석), 개헌 시도 및 상·하원 조건, 정책 아젠다(세제 포함) 분석.
- 일본 헌법(공식 영문) 제96조: 개헌 발의·국민투표 요건(각 원 3분의 2 + 국민투표 과반).
- 일본 총리실(관저) 한일 정상회담 요약 및 공동 기자발언(2026-01-13): 셔틀외교, 안보 협력(한일·한미일), 경제안보·공급망, 초국경 범죄 협력, 북한 이슈 공조 등을 명시.
- Jiji Press / nippon.com (2026-02-16):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각료를 보내지 않기로 한 결정(관계 개선을 의식한 조정) 보도.
- Jiji Press / nippon.com (2026-02-09): 야스쿠니 참배 가능성과 “국제적 이해 확보” 발언, 집권 후 참배 자제 맥락.
- Reuters (2025-11-13, 2025-11-20): 대만 관련 발언을 둘러싼 중국의 강경 반발과 중일 관계 경색 양상.
- AP (2025-12-31, 2025-10 무렵 보도): 일본의 방위력 강화 흐름과 다카이치 체제의 ‘2%’ 가속, 지역 반응.
- Reuters (2025-11-06): 다카이치 정부의 확장 재정 성향 및 경제정책 회의 인선(‘리플레이션’ 성향)과 재정 규율 긴장.
- East Asia Forum (2026-02-16): 선거 승리의 맥락(스캔들·연정 재편·개인 브랜딩)과 향후 불확실성(재정·안보·개헌).
- Cambridge University Press (German Law Journal, 2019): 일본 헌법이 1947년 이후 개정된 적 없다는 ‘헌법 안정성’ 논의.
- Nippon.com (2017): 일본 헌법 개정이 어려운 이유(96조의 절차적 장벽) 해설.
- 세종대(또는 한국 내 공개 프로필/소개 자료): 호사카 유지의 연구 분야 및 경력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