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파리는 ‘낮은 도시’가 되었나
도시는 대체로 두 가지 방식으로 기억된다. 첫째는 “여기 좋더라” 같은 감상이고, 둘째는 “여긴 저렇게 살아야 돌아간다” 같은 규칙이다. 파리는 둘 다로 기억되는 도시다. 엽서에 찍히는 파리는 균일한 높이의 석조 건물, 선으로 정돈된 발코니, 회색빛 지붕이 만든 수평의 리듬을 자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리를 ‘낮은 도시’라고 부른다. 실제로 파리의 전통적 도심 풍경이 대체로 6~7층짜리 석재 건물의 반복으로 읽히는 이유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오래도록 ‘높이’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역사와 맞물려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다. 파리는 “원래부터 고층이 없는 도시”가 아니라, “고층을 특정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 집착해온 도시”에 가깝다는 점이다. 파리 도심에 고층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도심 한가운데서 ‘스카이라인의 룰을 깨는 방식’으로 솟아오른 고층은, 도시 전체의 정책과 감정선을 건드리는 버튼이 된다. 그리고 그 버튼을 가장 강하게 눌러버린 상징이 바로 투르 몽파르나스다.
전후 ‘현대화’의 기술: 몽파르나스라는 실험실
파리 남쪽의 몽파르나스는 원래 “멋 좀 아는 사람들이 모여 노는 동네”라는 문화적 서사가 강했다. 20세기 초엔 카페, 작업실, 살짝 빈곤한 예술가들의 생활이 엉켜 돌아가던 곳이고(그 시절의 이름값은 아직도 관광 동선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낭만’이라는 단어가 붙기 쉬운 지역이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도시들이 다 비슷했듯, 파리도 “낡은 도시를 최신형으로 갈아끼우자”라는 욕망을 갖게 된다. 특히 교통·업무·상업 기능을 깔끔하게 재배치하는 건, 당시의 ‘진보’ 감각 그 자체였다. 이때 갸르 몽파르나스 주변은 거대한 변신 프로젝트의 핵심 무대로 들어간다. 1960년대 초부터 진행된 재개발 구상이 현실 궤도에 오르면서, 옛 역의 일부 기능을 옮기고 철거·신축이 이어지는 일정이 공공적으로 논의된다. 1964년 가을의 보도만 봐도, 구역별로 사무실·주거를 공급하고 기존 역을 철거해 사업을 단계적으로 완성하겠다는 계획이 ‘이제 진짜 진행된다’는 톤으로 잡혀 있다.
여기서 핵심은 “탑 하나”가 아니라 “세트 상품”이라는 점이다. 투르 몽파르나스는 단독 조형물이 아니라, 역·상업·오피스가 한 덩어리로 얽힌 대형 복합개발의 봉우리였다. 그리고 1960~70년대식 도시공학이 좋아하던 방식, 즉 보행자 동선을 지상에서 끊고 ‘데크(슬래브) 위’에 새 도시를 만든다는 발상(프랑스어로는 ‘urbanisme sur dalle’)의 대표 사례가 된다. 오늘의 파리 시(市) 자료도 이 일대를 “1960년대 유산인 데크형 도시계획”의 대표로 짚고, 그래서 지금은 환경·보행·개방성 기준에 맞춰 구조 자체를 다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투르 몽파르나스의 충격: ‘미움’이 정책이 되는 순간
타워 자체의 사실관계부터 간단히 정리하자. 투르 몽파르나스는 1969년경 본격 착공해 1973년 6월에 준공·개장(공식적으로는 6월 18일 ‘inauguration’로 안내되는 경우가 많다)했고, 높이는 약 210m급이다.
여기까지는 그냥 “한 시대의 야심작”이다. 문제는 이 야심이 파리의 ‘시각적 운영체제’와 충돌했다는 데 있다. 파리의 도심 풍경은, 에펠탑처럼 예외적으로 솟은 랜드마크가 있어도 기본적으로는 낮고 촘촘한 수평의 패턴으로 읽히는데, 투르 몽파르나스는 그 패턴을 ‘한 방에’ 끊어버리는 시그널로 작동했다. 그래서 이 건물은 완공 직후부터 오랫동안 대중적 조롱과 혐오를 동시에 받는 상징이 된다. 심지어 “여기 전망대가 파리에서 제일 뷰가 좋다. 왜냐면 거기서만 이 건물이 안 보이니까” 같은 농담이 굳이 설명 없이도 통하는 수준이 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파리에서 ‘미움’이 단순한 감정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르 몽파르나스를 둘러싼 논쟁은 “예쁘냐 못생겼냐”에서 멈추지 않고, “그럼 앞으로 이런 건물을 계속 지을 거냐”라는 규칙 싸움으로 번진다. 그리고 이 감정의 폭발은 실제 도시계획의 숫자로 번역된다.
37미터의 봉인: 도심 고층이 ‘추방’되는 방식
1977년, 파리의 도시계획 체계 안에서 높이를 강하게 제한하는 장치가 본격화된다. 대표적으로 널리 인용되는 ‘37m 상한’은 이 시기 도심 고층을 사실상 봉인하는 상징적 숫자가 됐다. 이 제한은 투르 몽파르나스 이후 형성된 반동과 연결되어 설명되는 경우가 많고, 언론·평론에서도 “1977년에 파리 안쪽에 37m 제한이 걸리며 고층이 외곽으로 밀려났다”는 서사로 자주 정리된다.
이게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문서’로도 확인되는 지점이 있다. 파리 전문 도서관(공공 아카이브 성격)의 서지 정보에는 “1977년 2월 28일자(프레펙투랄) 승인으로 확정된 파리의 토지이용계획(POS)”이 명시돼 있다. 즉 “1977년의 POS는 실재했고, 그 시기에 규칙이 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비교적 단단하게 잡힌다.
그렇다고 해서 파리가 ‘고층 자체’를 혐오만 했던 건 또 아니다. 파리는 고층을 완전히 없애기보다, 위치를 분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엽서의 파리”와 “업무의 파리”를 분리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그 분리 전략의 대표 무대가 라 데팡스다. 라 데팡스는 파리 서쪽 외곽의 대형 비즈니스 지구로, 역사축(개선문 쪽으로 이어지는 축)을 연장하는 도시계획과 함께 ‘파리 바깥의 고층 실험장’으로 성장해 왔다. 관련 안내 자료에서도 1958년 9월 9일자 법령으로 EPAD(라 데팡스 개발을 위한 공공기관)가 만들어지고, 그 기관이 토지 확보·인프라·개발권 배분 등을 맡아 지구를 조성한 과정이 설명된다. 즉 고층은 “없앤다”가 아니라 “도심 밖에서 관리한다”로 재배치된 셈이다.
다시 높아지려다, 다시 낮아진다: 2010~2024의 반전
시간이 흘러 2000년대 후반~2010년대에 들어서면, 파리는 잠깐 “그래도 우리도 조금은 높아져야 하지 않나?”라는 질문을 다시 꺼낸다. 실제로 2010년 11월 무렵 보도들을 보면, 파리 시의회가 PLU 규칙을 일부 수정해 특정 구역에서 주거용은 50m, 업무용은 180m까지 허용하는 방향을 논의·가결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때의 논리는 대체로 “도시의 밀도·지속가능성·경제활동을 함께 보자” 쪽이었고, 반대 논리는 “고층은 에너지 집약적이고 파리의 풍경을 해친다” 쪽으로 갈린다.
이 ‘부분 완화’ 분위기에서 상징적으로 등장한 기획이 투르 트리앙글이다. 설계는 헤어초크 & 드 뫼롱, 사업 주체로는 유니베일-로담코-웨스트필드가 핵심으로 언급된다.
이 프로젝트는 발표(2008년 공개) 이후 수년간 법적·정치적 공방을 겪었고, 결국 2022년 2월(보도 기준) “공사가 시작됐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현실 단계로 진입한다. 완공 목표는 2026년 전후로 반복 제시된다.
바로 여기서 파리의 ‘기억’이 다시 작동한다. 사람들은 투르 트리앙글을 볼 때 “새로운 랜드마크”만 보지 않는다. “투르 몽파르나스 시즌2 아니냐”라는 감정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이번에는 ‘기후’라는 옷을 입고 더 강해진다. 2023년 6월, 파리의 ‘PLU 비오클리마티크(생물기후형 도시계획)’ 논의가 본격화되며, “신축은 12층/37m 수준으로 제한”이라는 프레임이 다시 전면에 나온다.
다만 날짜는 정확히 잡아야 한다. 2023년 6월은 ‘최종 확정’이라기보다, 파리 시의회가 PLU 개정안을 **‘정지(Arrêté)’**해 다음 단계로 넘긴 시점에 가깝다. 파리 시의 공식 설명도 “2023년 6월 5일 시의회가 PLU 프로젝트를 arrêté 했다”는 식으로 적는다.
그리고 이 PLU 비오클리마티크가 **“시의회 표결로 확정(버전 기준)”**된 시점은 2024년 11월 20일로 명시된다. 파리 오픈데이터(PLU 높이 상한 데이터셋)가 “2024년 11월 20일 시의회에서 표결된 버전”이라고 단서까지 달아두고 있다.
결론적으로 “2023년에 부활했다/2024년에 확정됐다”라는 말이 섞여 돌아다니는 이유는, 정책 프로세스(초안 확정 vs 최종 의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파리는 왜 다시 37m로 돌아갔나. 표면 이유는 ‘경관’이지만, 내부 엔진은 ‘기후·열·물·주거’로 확장돼 있다. 프랑스24는 파리 시의 “bioclimatic” 도시계획이 녹지·사회주택·기후 적응을 강조하며 도시를 바꾸려 한다고 전한다.
르몽드 보도는 2024년 11월 20일 표결된 새 PLU가 녹지와 수변·투수성 같은 기후 대응을 전면에 두면서도, 땅이 부족하니 기존 건물 ‘증층(surélévation)’을 통해 주택을 더 만들려는 방향을 함께 보여준다고 정리한다. 높이는 37m로 민감하게 제한하면서, 조건부로 1~3개 층을 더 얹는 방식이다. “높아지지 말자”가 아니라 “아예 새로 뾰족하게 솟지 말고, 기존 덩어리를 조금씩 손보자”에 가깝다.
‘망친’ 게 아니라 ‘규칙을 만든’ 건물의 미래
그러면 투르 몽파르나스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 재미있게도 이 건물은 “없애자”보다 “고쳐 쓰자”로 더 자주 논의된다.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리노베이션 경쟁과 재설계 이야기가 반복됐고, 2026년 현재는 ‘타워 단독’이 아니라 몽파르나스 일대 전체를 다시 푸는 프로젝트가 더 큰 이슈가 된다.
2026년 1월 7일, 파리 시와 EITMM(투르 몽파르나스를 포함한 복합단지 소유자 측)이 프로토콜을 체결하며 “재활성화가 공식 출발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계획의 핵심 키워드는 개방(막힌 동선 해체), 보행(데크형 동선의 재정리), 녹지(식재 확대), 그리고 기능 혼합(학생주거·문화·스포츠 같은 프로그램 도입)이다. 설계는 렌초 피아노 빌딩 워크숍이 주도한다고 소개된다.
일정은 자료마다 강조점이 조금 다르다. 파리 시 설명에는 타워 공사가 2026년 여름 시작, 상업시설 공사는 2028년 시작 등 단계적 일정이 적혀 있다.
반면 2026년 1월 르몽드의 영어판 보도는 “몽파르나스 복합부의 대규모 정비가 2028년 착공 목표”라는 식으로, 굵직한 공사 스타트를 2028 쪽에 두고 설명한다. 또한 새 규제가 적용되기 전에 인허가를 서둘러 넣었다는 정치적 논란도 함께 전한다. 즉 이 프로젝트는 ‘누가 봐도 낡았으니 고치자’는 합의 위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기준으로, 누구의 우선순위로, 어떤 절차로”라는 파리 특유의 싸움을 다시 불러오는 중이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못생긴 건물 vs 아름다운 도시”로만 정리하면 너무 쉽다. 실제로 투르 몽파르나스가 남긴 건 미관 논쟁만이 아니다.
첫째,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현대화’를 선택하느냐다. 1960~70년대의 답은 ‘대형 복합개발 + 데크형 도시 + 오피스 중심’이었다. 지금의 답은 ‘기후 적응 + 보행 회복 + 녹지 + (그래도 필요한) 주거 공급’이다. 같은 장소를 두고 시대가 바뀌면 “좋은 도시”의 정의도 바뀐다.
둘째, 높이는 숫자이면서 동시에 감정이라는 점이다. 37m라는 수치는 기술적으로는 ‘상한’일 뿐인데, 파리에서는 ‘정체성’의 표식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고층 논쟁은 늘 “주거가 부족하니 높여야 한다” vs “경관과 환경을 위해 묶어야 한다”의 싸움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그 반복의 원형(원본 파일)이 투르 몽파르나스다.
셋째, 고층을 없앤다고 고층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심에서 높이를 억제하면, 업무·상업 기능은 외곽으로 이동하고(라 데팡스 같은 형태로), 주거 압력은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온다(증축, 재생, 외곽 확장, 통근 증가 등). 파리가 선택한 해법은 “고층을 중앙에 두지 않는다”에 가까웠지만, 그 대가로 “도시권 전체에서의 분업”이라는 구조를 강화했다.
결국 “파리를 망친 마천루”라는 말은 절반만 맞다. 한 건물이 파리를 물리적으로 망쳐서라기보다, 그 건물이 파리의 감각을 자극해 도시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규칙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투르 몽파르나스는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게 아니라, 파리가 스카이라인을 대하는 태도를 고정시킨 건물이다. 그 태도가 2010년대에 잠깐 흔들렸다가, 2024년(정확히는 11월 20일) 다시 ‘37m’로 결박된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의 다음 장이다.
References
- 투르 몽파르나스 공식 안내(역사·개장일 등)
- 투르 몽파르나스에 대한 비평/역사적 맥락(1977년 37m 제한, 2010년 부분 완화 서술 포함)
- 투르 몽파르나스 50주년 시점의 여론·논쟁·리노베이션 서사 정리
- 1977년 파리 POS(토지이용계획) 승인 사실의 서지 기록(날짜·문서 존재 확인)
- 2010년 파리 PLU 규칙 ‘부분 완화’ 보도(주거 50m/업무 180m)
- 파리 PLU 비오클리마티크 공식 설명(2023년 6월 arrêté 등 절차 맥락)
- 파리 오픈데이터: PLU 비오클리마티크 높이 상한 데이터(“2024년 11월 20일 표결 버전” 명시)
- 르몽드: 2024년 11월 20일 표결된 PLU, 37m 상한과 증축 전략(주거 공급 방식)
- 프랑스24: 파리 ‘bioclimatic’ 도시계획의 기후·주거·녹지 목표 요약
- 2026년 파리 시 공식 페이지: Maine-Montparnasse 재구조화(데크형 도시유산, 보행·녹지·용도혼합, 단계별 일정)
- 2026년 파리 시 보도자료: 프로토콜 체결 및 프로젝트 개요
- 르몽드(2026-01): 몽파르나스 일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와 정치적 논란(착공 타임라인 포함)
- 라 데팡스 공식 역사 가이드(PDF): EPAD 설립(1958년 9월 9일) 등 개발 거버넌스 설명
- 투르 트리앙글 착공(2022년 2월) 및 2026년 완공 목표 보도
- 투르 트리앙글 공정·현황(2025년 영상/보도 기반 진행 상황)
- 몽파르나스의 예술가 문화권 서사(지역 기억과 대비를 위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