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국내 증시, ‘전교 1등’으로 거듭나다

국내 증시가 이처럼 호조를 보인 이유는 정치·정책 리스크가 걷히고 AI를 필두로 한 실물 성장 모멘텀이 결합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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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기술 설명 일러스트

2025년 한국 증시는 말 그대로 전환기를 맞았다. 코스피 지수는 연말 4,214.17을 찍어 전년 대비 75% 넘게 폭등했고, 코스닥도 36% 뛰었다. 심지어 19개 업종 지수가 모두 상승하는 진기록이 나왔다. 외환위기나 IT 버블 때도 못 봤던 광경이다. 덕분에 G20·OECD 국가 중 주가지수 상승률 1위를 기록했고, 이 수치는 1987년(93%)·1999년(83%) 이후 역대 3위 수준이다. 국내 증시가 이처럼 호조를 보인 이유는 정치·정책 리스크가 걷히고 AI를 필두로 한 실물 성장 모멘텀이 결합한 덕분이다.

2024년 말까지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정치 불확실성과 미·중 갈등 속에 눌려 있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전쟁까지 겹치자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새해 들어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새 정부의 상법 개정, 대주주 양도세 완화 등 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나오고, 세계 경기가 Fed 긴축에서 완화 기대로 전환되는 흐름이 맞물렸다. 덕분에 우선 대형주부터 실적과 배당 개선 기대가 다시 커졌고, 차츰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이른바 ‘원화 약세와 코스피 급등’ 조합은 역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신영증권 김학균 센터장은 “원화 약세와 코스피 급등 조합은 과거에도 흔치 않았으며, 결국 기업 실적이 증시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증시 상승의 중심에는 역시 반도체·IT 업종이 있었다. AI 수요 급증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단연 돋보였다. 두 회사는 KOSPI를 “멱살 잡고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된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AI 서버용 메모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반도체 ‘투톱’의 주가도 작년 한 해 삼성전자가 2배 이상, SK하이닉스는 3배 가까이 폭등했다. 시장에선 SK하이닉스가 2030년까지 21.6조원(약 150억 달러)을 신규 공장 증설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을 주목한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오스틴 공장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메모리 가격 상승이 설비투자(Capex)를 압박한다고 한숨을 쉬었지만, 기술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처지다. 국내 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점유율은 70% 이상이어서, 이런 수요 급증은 한국 기업에 호재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 증시와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 증시는 이번 반등기 내내 미국 시장을 따르지 않았다. 최근 몇 달간 미국 나스닥 등은 조정받는 반면, 코스피는 오히려 계속 오름세를 탔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업종 구성의 차이를 든다. 미국 시장은 반도체·하드웨어 비중이 낮고 AI 관련 소프트웨어·서비스가 많은데, 올 들어는 실적 개선 기대보다 과도한 투자 부담이 부각됐다. 반면 국내 시장은 반도체·IT·자동차 같은 실물 성과주 비중이 높아, AI 열풍 덕분에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다. 실제로 최근 12개월 KOSPI 상장사 이익 전망치(EPS)는 약 24.5% 증가한 반면, S&P500 기업들은 1~2%대 증가에 그쳤다. 글로벌 투자자금도 한국으로 유입되며 상승을 밀어 올렸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빅테크는 막대한 설비투자 부담이 있지만, 한국 반도체는 AI 수요로 실적 기대감이 커지는 수익성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 인프라 경쟁, ‘치킨게임’의 서막

이제 시선을 AI 산업 전반으로 옮겨보자. 전 세계가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불꽃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마치 끝나지 않는 ‘치킨게임’ 같다. 브리지워터는 미국 주요 IT기업이 2026년에 AI 관련 설비에 총 6,5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수치는 작년(약 4,100억 달러)보다 훨씬 커진 규모다. 구글과 MS는 수조 달러대 연간 예산을 AI에 쏟아붓고 있고, 메타는 2026년 설비투자 규모를 1,150~1,350억 달러로 잡았다. 오픈AI는 2030년까지 AI 연산용 컴퓨트에 약 6,00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2025년 매출은 130억 달러, 2030년엔 연 2,8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앤트로픽 역시 2026년에 매출 180억 달러, 2027년에 550억 달러를 전망하며, 작년보다 3~4배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회사들은 당장엔 적자를 감수하면서라도 기술 개발과 데이터센터 확충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브리지워터는 “AI 붐이 물리적 인프라 경쟁의 더 위험한 단계로 접어들었다”면서, 이 막대한 지출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른 부문에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령 현재 투자 규모가 거품처럼 보일지라도, 많은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잦아들 거품이 아니라 장기전으로 보고 있다. AI 산업은 마치 인터넷 쇼핑 초창기처럼 수많은 기업이 경쟁하며 성장하는 단계다. 아직 2년 차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5년 이상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 구글·아마존·엔비디아 같은 기업은 생존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무도 먼저 손을 들 수 없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성과가 검증되는 장기 승부가 될 전망이다.

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에 대비해 국내 기업들은 새 생산라인을 확충 중이다. 기존 서버용 메모리뿐 아니라 고성능 AI 가속기용 부품 수요도 폭증할 것으로 보여 한국 반도체업계에는 당분간 훈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공장에선 새로운 웨이퍼 생산 라인이 추가로 가동을 준비 중이고, 수출 규모도 올 들어 크게 늘었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치킨게임’과 무한 경쟁은 국내 증시에 어떤 의미일까. 지금까지는 한국 증시가 글로벌 AI 경쟁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작년 메모리 가격 상승, 실적 반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다시 들어오면서 전 업종이 고르게 랠리하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른바 ‘육천피(6000 고지)’ 기대도 현실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26년 2월 코스피는 6,000선을 돌파해 6,083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요 증권사들은 올해 상장사 영업이익 전망치가 연이어 상향 조정되고 있는 점을 들어, 2년 연속 상승장도 가능하다고 낙관한다.

물론 항상 모든 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부에선 ‘AI 투자 거품론’도 나온다. 하지만 구체적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AI 분야 특성상, 현재 투자는 선제적 대응이라 볼 여지가 크다. 당분간은 AI 인프라 경쟁과 한국 반도체 수혜라는 두 축으로 국내 증시가 움직일 공산이 크다. 과거처럼 막연히 오르는 장은 아니지만, 발 빠르게 대응한 기업 실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지금 증시 상황은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호재와 실적으로 움직이는 이례적 박터지기”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AI 경쟁과 메모리 업황이 어떻게 흘러갈지가 관건이다. 적어도 과거처럼 미국 테크 대장주가 계속 주도하는 시장 패턴은 한동안 보기 힘들 것이다. 지금은 국내 반도체·IT 기업이 전 세계 AI 교통정리를 주도하는 모양새다. 투자자 입장에선 어려운 낱말보다는 “닭 잡듯 치열한 싸움” 같은 현실적인 그림이 훨씬 와닿을 테다. 어쨌거나 지금 한국 증시는 예전 어느 때보다 ‘골고루’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긴 호흡의 경쟁이 되겠지만, 이 사이클에서 한국 시장이 얻는 기회도 적지 않아 보인다.

References:

  •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인터뷰 (매일경제)
  • 2025년 국내증시 결산 (매일경제 시드머니)
  • 2025년 업종별 주가지수 변화 (뉴스핌)
  • 브리지워터 ‘AI 인프라 투자’ 보고서 (Reuters)
  • 메타·오픈AI·앤트로픽 AI 투자 동향 (Reuters)
  • SK하이닉스 21.6조원 투자계획 (Reuters)
  • 메모리 가격·AI 경쟁 (비즈니스포스트)
  • 코스피 최고치 경신 (Trading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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