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물가·금리 하락과 적극재정론

저물가가 지속되면 금리 인하 여력이 줄고, 금리 인하 여력이 줄면 재정정책이 유일한 카드가 된다. 일본의 경험이 보여주는 이 순환, 그리고 한국이 같은 경로로 들어서고 있는지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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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조기 총선에서 자민당 새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는 압승을 거두며 ‘책임 있는 적극재정(責任ある積極財政)’ 기조를 앞세운 새내각 구성을 공언했다. 그러나 등 뒤의 경제 흐름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한국은행에 해당하는 일본은행(BOJ)의 목표물가(2%)를 밑도는 저물가가 지속되면서, 금리 인상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CPI)는 2025년 하반기까지 연 3%대를 오가다 2026년 1월에 1.5%로 곤두박질쳤다. 가솔린 일시세 감면과 정부 보조금 영향 등을 제외해도 1월 근원물가가 2.0%로 목표치에 가까워진 반면, 어음·채권 등 금융 안정 여부를 보며 조심스레 기준금리를 올리려던 일본은행은 당분간 추가 인상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영국 파운드화 억제에도 쓰이는 채권시장 시그널을 보면 10년 국채 금리도 다카이치의 식품 세금 감면 공약 발표 직후 27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결국 다카이치 정권은 “임금 상승을 동반한 2% 달성”을 목표로 일본은행의 협력을 당부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는 ‘과감한 재정 투입’으로 경제를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한다. 그는 경제를 ‘세수 기반’으로 보고, 기업 이익이 오르면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세수가 증가하도록 소득·소비 진작에 예산을 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실제로 내년 예산안부터는 멀티년(multiyear) 예산과 대형 성장기금이 등장할 전망이다. 이미 다카이치 정부는 환경·반도체·에너지 등 특정 분야 예산을 별도 회계로 떼어내 재정 부담을 분산시키겠다고 제시했다. 결국 재정 적자는 일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일본 국가부채가 GDP 대비 230%가 넘는다고 지적하면서도 이번 선거 전 발표된 재정 확대안을 감안하면 ‘안정적’ 등급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재정 건전성 우려가 커졌다. 실제 다카이치 내각은 식료품 소비세(8%)를 2년간 유예(약 5조엔)하겠다고 예고해 채권시장을 흔들었고, 그 결과 내년 회계연도(2026년 4월~)의 1차 예산 균형은 8000억엔 적자로 전환될 전망이다(기존 예상은 3조6000억엔 흑자). 이는 작년 말에 편성된 21조엔대 경기부양책이 주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재정 기조가 인플레이션 부담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영국계 싱크탱크는 다카이치노믹스(Sanaenomics)가 성장과 물가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데, 현 상황에선 장기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저명 칼럼니스트 토바이어스 해리스도 “성장률 이상의 재정 지출을 감행하면 채무가 늘어나지만, 다카이치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부채/GDP 비율 상승 폭을 낮추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한편 대다수 이코노미스트는 BOJ가 0.75%인 정책금리를 2026년 중 1%로 높일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Takaichi 총리는 금리 인상보다는 장기투자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태도다.

개헌과 안보의 갈림길

다카이치 신정부는 임기 내 헌법 개정을 공식화했다. 쇼와(昭和) 원년(2026년)은 현헌법 제정 100주년이기도 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선 직후 각 당과 국민 토론을 촉구하며 “가능한 한 조속히 개헌 국민투표가 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집권당 연립인 자민·일본혁신당은 자위대의 명시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당론에 포함시키기로 한 상태다. 그러나 헌법 개정은 난관이 태산이다. 현행 헌법은 양원의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의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돼 있다. 상원(참의원)의 개헌 동력은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설령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국민투표 통과는 쉽지 않다. 개헌 요건을 제시한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아직 국민적 합의를 다지지 못한 채 다수당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아사히신문은 “‘국민의 의사’가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는 헌법 개정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촉구했다.

법·정치계 안팎에선 개헌과 군사정책 변화가 전쟁의 문턱을 낮출 것에 대한 경계도 크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현 정부의 안보·외교 정책이 헌법 제9조(평화주의) 정신을 훼손해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야당인 일본공산당은 “헌법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시도는 전후 역사상 유례없는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총선 과정을 두고서도 “다카이치가 군사·안보 정책에 대해 일체 설명하지 않고 재정 얘기만 앞세웠다”며 ‘헌법 개정을 위한 궤도’가 유권자의 심판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아베 정권 시절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키시다(岸田) 정부 아래에서는 ‘적 기지 공격 능력’ 등 방위력 증강 기조를 수립해 왔다. 다카이치 정부 역시 국방비를 늘리고 무기 수출 규제를 완화하며 보수파의 오랜 숙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다만 학계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실제 개헌·재무장론이 현실화되기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저명 외교안보 매체는 “개헌 발의의 헌법적·외교적 장벽이 높다”며 “다카이치가 당분간은 동맹과 지역 안보를 함께 고려한 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미국·호주 등 주요 동맹국들도 일본이 돌발적으로 군사노선을 강화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전쟁 가능한 국가’ 전환 여부는 국내 정치보다도 국제정세와 법적 절차의 제약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을 전망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경제 회복과 안보 강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공언한다. 다만 이를 놓고는 국내외에서 “무리한 계획”이라는 비판과 “정치적 실험”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결국, 다카이치 시대의 최대 관전포인트는 ‘책임 있는 투자’와 ‘평화주의 노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그려나가느냐이다.

References:

Nomadamon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