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시장이 ‘안도’라는 이름의 숨을 한 번 들이마신다
이날 국내 장의 출발점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전 거래일(현지시간) 월가에서는 기술주가 반등하면서 주요 지수가 동반 상승했다. 특히 나스닥과 S&P 500이 의미 있게 올랐고, “AI 밸류에이션이 너무 앞서갔나?”라는 불안이 잠깐 누그러진 장이었다. 엔비디아 같은 AI 하드웨어 대표주가 강세를 보이며 심리를 끌어올렸고, 소프트웨어 쪽에서도 폭락 후 되돌림이 나왔다. 오라클 급등 같은 ‘리스크 온’ 신호도 같이 찍혔다.
다만 “그럼 이제 다시 편하게 사도 된다”는 분위기까지는 아니었다. 시장의 시선이 ‘다음 고비’로 옮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에는 고용지표와 물가지표 같은 핵심 데이터가 예정돼 있었고, 일부는 정부 셧다운 여파로 일정이 밀리며 변수가 더 커진 상황이었다. “결국 연방준비제도가 언제, 얼마나 금리를 움직이느냐”가 다시 한 번 시장의 프레임이 됐고, 그래서 반등은 반등이되 ‘조건부 반등’에 가까웠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다. 이런 날의 반등은 “다 같이 올라가는 불장”이 아니라 “큰돈이 어디까지 들어오나를 떠보는 장”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큰돈’은 국내 장에선 대체로 외국인 수급으로 읽힌다.
장이 열리자, 코스피는 체면을 지키고 코스닥은 미끄러진다
서울 장은 아주 전형적인 ‘전강후약’ 그림을 그렸다. 코스피는 장 초반 미국발 훈풍을 받아 강하게 출발했고(시가 5,350선), 한때 5,363선까지 치고 올라갔다가 오후 들어 상승폭을 대부분 반납하며 5,301.69로 강보합 마감했다. 전날 코스피가 4% 넘게 급등했던 만큼, “좋았던 건 좋은 거고, 이익은 이익대로”라는 차익 실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타이밍이었다.
수급은 더 선명했다. 코스피 현물에선 외국인과 기관이 순매수, 개인이 순매도였다. 숫자로 보면 외국인 약 1,400억 원대 순매수, 기관 5,600억 원대 순매수, 개인 8,700억 원대 순매도다. 요약하면 “개인이 팔아준 물량을 외국인·기관이 받았다”는 구도다.
반면 코스닥은 ‘출발은 상승, 결론은 하락’으로 끝났다. 시가는 상승(1,132선)이었고 장중 1,141선까지도 갔지만, 오전 중 하락 전환 후 저점(1,109선)을 찍고 결국 1,115.20으로 마감했다. 등락률 기준 -1.10%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 순매수를 찍은 주체는 사실상 개인뿐이었다(개인 순매수 약 3,200억 원대, 외국인·기관 동반 순매도). 제목이 “개인만 산 코스닥”으로 느껴질 만한 수급이다.
이 장면이 더 흥미로운 이유는, “미국 기술주가 좋았다는데 왜 코스닥이 더 약하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다. 답은 두 갈래다. 하나는 ‘그날의 업종·종목 구성’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 구조’다.
덧붙이면 환율도 투자자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원/달러 환율은 1,459.1원으로 소폭 하락(원화 강세) 마감했다. 지수 입장에선 대체로 우호적인 신호지만, 이 정도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로 외국인 자금이 단숨에 돌아서긴 어렵다. 오히려 “이 주에 나오는 미국 데이터가 달러 흐름을 바꾸면 환율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대기심리를 키우는 쪽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형보다 못한 아우’가 된 이유, 코스닥은 원래 외국인이 깊게 못 들어오기 쉽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형(대형주)·아우(성장주)”로 부르는 비유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서 출발한다. 코스피가 한국거래소의 메인보드로서 대형·성숙 기업이 중심인 시장이라면, 코스닥은 벤처·중소·성장 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하려고 만든 시장이다. 상장 요건도 코스피보다 완화돼 있다는 설명이 공식 가이드에도 반복된다.
이 구조는 투자자 구성으로 직결된다. 한 연구는 코스닥 상장기업이 (비슷한 규모의 코스피 기업군과 비교해도) 자산·자본 규모가 훨씬 작고, 거래에서 개인 비중이 높으며, 기관 비중은 매우 낮게 나타난다고 정리한다. 표로 보면 2010년대 구간에서 개인 비중이 코스닥 쪽이 압도적으로 높고(대략 90%대), 기관은 한 자릿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나타난다. 외국인 비중도 코스피 대비 낮은 편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이건 ‘취향’ 문제가 아니라 ‘운용’ 문제다. 큰 돈은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길이 넓어야 한다. 유동성이 얕거나(혹은 특정 종목에만 몰려 있거나), 정보 비대칭이 크거나, 변동성이 큰 구간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깊게 들어오지 못한다. 실제로 외국인은 코스닥에서의 거래 자체가 코스피보다 훨씬 낮게 관측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이월 십일처럼 “지표를 앞두고 시장이 잠깐 긴장하는 날”에는 코스피는 ‘최소한의 체면치레(보합권)’를 하고, 코스닥은 ‘개인의 저가매수만으로 버티다 하락’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날 수급이 정확히 그 그림이었다. 코스피는 외국인·기관이 받았고, 코스닥은 외국인·기관이 팔았고, 개인이 홀로 받았다.
순환매의 하루, “한 방” 대신 “나눠 담기”가 만든 어색한 균형
그날 코스피가 완전히 꺾이지 않은 건 “반도체가 계속 달렸다”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표 반도체 대형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장중 약세로 돌아서며 지수 상단을 막았다.
그럼에도 지수가 버틴 건 자금이 한 업종에만 매달리지 않고 분산되는 ‘순환매’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주가 강했고, 운송·유통·음식료 등 소비 관련 업종도 플러스 흐름을 탔다. 대표적으로 KB금융 같은 금융 대형주가 강세였고, 정부의 유통 규제 완화(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추진) 기대가 유통·리테일 심리를 살려주는 촉매로 작동했다는 해석이 붙었다.
업종 단위로 보면 ‘이상하게 강한 곳’이 튀기도 했다. 종이·목재 업종이 두드러지게 올랐다는 보도처럼, 시장이 꼭 “AI만, 반도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하루였다. 반대로 전기·가스 같은 방어적 업종이 밀린 것도 포인트다. 이건 단순히 “이 업종이 좋다/나쁘다”라기보다, 큰돈이 위험을 조절하면서 “오를 만한 자리를 찾아서 옮겨 다녔다”는 신호에 가깝다.
코스닥은 여기서 더 불리했다. 코스닥 시총 상위에 많은 2차전지·바이오·장비주가 동반 약세를 보였고, 외국인·기관이 던지는 물량을 받아줄 ‘큰 손’이 사실상 개인뿐이었다. 그래서 지수는 오전에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회복 탄력이 떨어졌다.
외국인의 마음을 돌리는 스위치는 무엇인가
“외국인의 마음을 돌려라”라는 말은 멋있지만, 실제로는 꽤 건조한 체크리스트에 가깝다. 이월 십일의 시장을 기준으로 보면, 스위치는 크게 단기와 중장기로 갈린다.
단기 스위치는 데이터와 시간표다. 그 주에는 미국의 고용·물가·소비 관련 지표 발표가 예정돼 있었고, 이는 금리 경로(즉 연준의 다음 스텝)에 대한 시장 기대를 재설정할 수 있는 재료였다. 게다가 일부 지표는 셧다운 탓에 일정이 조정되며 불확실성을 키웠다. 이런 환경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코스닥 같은 ‘고베타(잘 오르고 잘 빠지는) 시장’보다 코스피 같은 ‘대형·유동성 시장’에 더 머무르기 쉽다.
중장기 스위치는 ‘구조’다. 코스닥이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되려면, 단순히 몇 종목이 잘 오르는 수준을 넘어 “여기는 제도적으로 믿고 오래 머물러도 된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코스닥 신뢰·혁신 제고 방안’은 상징성이 크다. 요지는 명확하다. 코스닥의 운영 독립성·경쟁력을 강화하고, 상장심사·상장폐지 구조를 손보며, 기관투자자가 들어오기 쉬운 조건을 만들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방향이다. 발표문은 코스닥이 IT버블 이후 신뢰 회복이 충분치 않았고, 퇴출 지연·기관의 투자 기피 같은 문제가 남아 있다는 진단을 전제로 한다.
즉 “외국인의 마음”은 감정이 아니라 제도·유동성·환율·금리·데이터 일정 같은 변수를 합친 결과물이다. 이월 십일은 그 변수들이 동시에 “조금만 더 보자” 쪽으로 기울었던 날이고, 그래서 코스닥은 개인만 남고, 코스피는 그래도 외국인·기관이 체면을 지켜줬다.
결론, 그날은 ‘상승’도 ‘하락’도 아닌 ‘질서 재정렬’의 날이다
이월 십일 장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미국발 반등을 타고 뛰어올랐지만, 연휴·지표를 앞에 두고 돈이 다시 자리 배치를 한 날”이다.
코스피는 외국인·기관이 받으면서 보합권을 만들었고, 코스닥은 외국인·기관이 빠지자 개인이 홀로 버티다 하락했다. 이 차이는 “누가 더 똑똑했나”가 아니라 “시장 구조상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나”의 차이에 가깝다.
그래서 ‘외국인의 마음을 돌리려면’ (단기적으로는) 미국 지표와 환율이 흔드는 리스크 레벨이 내려와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코스닥이 기관과 장기자금이 들어올 만한 신뢰·퇴출·공시·보호 체계를 쌓아야 한다. 이월 십일은 그 조건들이 아직 완전히 충족되지 않았을 때 시장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꽤 정직하게 보여준 하루다.
Reference list
- 이월 십일 코스피·코스닥 지수 흐름(시가/고가/종가), 투자주체별 순매수, 환율 종가:
- 전일(현지) 미국 증시 반등의 성격(기술주 주도, 데이터 대기, 주요 종목 움직임):
- 미국 고용·CPI 등 핵심 지표 일정이 셧다운 영향으로 지연된 맥락:
- 설 연휴(Seol) 공휴일 일정의 공식 정보:
- 코스피·코스닥의 구조적 차이(시장 목적, 상장 요건 강도 차이, 투자자 구성의 장기적 특징):
- 코스닥 신뢰·기관자금 유입 여건 개선을 위한 정책 방향: